본관은 창원(昌原).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최선(崔詵)의 손자이며, 좌복야(左僕射) 최종재(崔宗梓)의 아들이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시어사(侍御史)에 올랐으나, 권신들이 싫어하여 정원부사(定遠副使)로 좌천되었다. 그 뒤 형부낭중을 지내고 1254년(고종 41) 추밀원부사에 올랐으며, 이듬해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로서 자신의 제안에 따라 기근구제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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