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Paraguay)

파라과이의 국기
파라과이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남아메리카 남부에 있는 공화국.
이칭
이칭
파라과이공화국, Republic of Paraguay
정의
남아메리카 남부에 있는 공화국.
개관

정식 명칭은 파라과이공화국(Republic of Paraguay)이며, 남미대륙 내륙에 위치한다.

면적은 40만 6752㎢, 인구는 678만 3272명(2015년 현재), 수도는 아순시온(Asuncion)이다.

독특한 ‘과라니-스페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종족구성은 메스타조 95%, 백인 및 인디언이 5% 정도이다. 언어는 스페인어와 과라니어를 병용하고 있으며, 종교는 가톨릭교가 90% 이상이다.

이 나라는 농업, 목축업 등 1차 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으며, 부존자원과 전력자원이 풍부하여 경제발전 잠재력이 크다. 동부 농촌지역에는 인구 60% 이상이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노동력의 질적 수준이 낮고 숙련기술자가 부족하여 국가개발 수행상 장애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형 사업인 이타이푸(브라질 합작, 1974∼1989), 야시크레타(아르헨티나 합작, 1978∼1990)의 양대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시행하여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하였으나, 세계적인 경제침체의 영향을 받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308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4,383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 공화제이며,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6년의 상원(45석)과 하원(80석)으로 구성된다. 주요 정당은 홍당(PC), 정통급진자유당(PLRA)이다.

약사

1525년 포루투갈인 가르시아(Alejo Garcia)가 발견했으나 1537년 스페인인 살라자르(Juan de Salazar)가 본격적인 개척을 시작하여 파라과이강변 교통중심지를 아순시온이라 명명하고 이 지역을 스페인의 식민지화의 근거지로 삼고 통치하였다.

이후 1811년 5월 14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5인의 집정위원이 통치했으나, 1814∼1840년에 프란시아(Francia, J. G. R.)가 집권하면서 독재정치와 쇄국정책을 실시하였다. 1844년에는 신헌법이 제정되고, 로페스(Lopez, C. A.)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862년까지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대외적으로는 국경분쟁을 둘러싼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와의 ‘3국전쟁’(1864∼1970), 볼리비아와의 차코(Chaco) 전쟁(1932∼1935)으로 인한 국력 소진과 계속된 내란 발발로 정정불안이 계속되었다. 1954년 5월 14일 스트로에스네르(Stroessner, A.) 장군이 쿠데타를 성공시켜 장기집권을 하였고, 그 뒤 1989년 5월 로드리게스(Rodr○guez, A.)가 또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후 민주화정책을 실시하여 1993년 8월 39년만에 민간정부가 출범했고, 1998년 8월 쿠바스(Cubas) 대통령의 취임을 통해 민간정부 2기를 맞았다.

2000년 5월에는 다시 쿠데타가 발생했으나 진압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우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4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외교 기본정책은 친미·친서방 외교노선이며, 특히 아르헨티나·브라질 양 대국과의 균형관계 유지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62년 6월 15일 수교한 후 2007년 현재 주 파라과이 상주대사관을 두고 있다. 양국은 1973년 6월에 문화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75년 7월 과학기술협력에 관한 협정, 1981년 12월 무역 협정, 1982년 12월 외교관 및 관용여권에 대한 사증면제 협정, 1992년 12월 투자보장 협정, 1996년 7월 범죄인인도 협정, 2000년 8월 EDCF차관시행 약정을 체결하였다.

210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파라과이 수출액은 2억 247만 달러로 자동차, 전자제품 등 공업상품이 주종목이고, 수입액은 1,965만 달러의 농업가공품 등의 1차 산업품목이 주종목이다.

파라과이는 원칙적으로 농업이민만을 수용하고 있는데, 1965년 우리나라 농업이민 이주가 시작된 후 1만 5000명에 달하였던 교민들 상당수가 인접국인 브라질·아르헨티나와 미국·캐나다 등지로 재이주하였고, 많은 교민이 수도 아순시온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일용잡화상·의류상·전자제품상 등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교민정착과정은 기존 생활권 침해라는 현지주민의 저항의식을 유발시켰으며, 또한 초기 정착과정에서 발생되는 교 민간의 불화가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한때 우리나라 이민정책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기도 하였으나 현지 교민의 자성과 융화, 우리나라 정부의 노력 등으로 완화추세에 있다. 현재 파라과이에는 약 5천여 명의 한국교민이 있다.

한편, 북한은 외교관계를 체결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주요수출입통계』(관세청, 2007)
『중남미사』(김창환, 송산출판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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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백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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