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구의 불상이 나란히 서 있는 마애불로 천연암벽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선각(線刻)을 더해 불신(佛身)을 표현하였고, 불두(佛頭)는 따로 만들어 얹었다.
전면에 있는 향좌측의 마애불은 향우측 불상에 비해 키가 더 크고 둥근 갓을 썼다. 왼손을 어깨높이로,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들어 연꽃 줄기를 붙잡고 있다. 여래로서 연꽃 줄기를 들고 있는 경우는 석가모니, 혹은 미륵불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불상의 명문에 미륵불을 언급하고 있어 미륵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넓은 어깨를 당당하게 벌리고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통견(通肩)의 착의를 하고 있다. 연꽃 줄기 아래의 가슴 부분에는 속의 가사를 입을 때 묶은 리본 모양의 띠 매듭이 보인다. 그 아래로 왼쪽 어깨로 쏠려 올라가는 듯한 ‘U’자형 옷 주름이 반복적으로 표현되며 흘러내리고 있는데 바위 맨 아래까지 흐릿하게 이어지고 있다. 좌우로는 양팔에서 흘러내린 소맷자락이 은행잎 모양의 옷 주름을 만들며 허리 아래에까지 늘어져 있다.
향우측의 불상은 향좌측의 마애불보다 키가 조금 작지만, 얼굴이 더 크며 네모난 갓을 쓰고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위의 자연적 상태 때문에 몸은 약간 옆으로 튼 모습이지만, 얼굴은 둥근 갓을 쓴 마애불과 마찬가지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마치 두 불상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듯한 인상이 흥미롭다. 착의법이나 옷자락의 흐름은 옆의 마애불과 같지만 바위 면의 폭이 좁기 때문에 바위 측면에도 옷자락을 새겼다. 전하는 바로는 연꽃을 든 상은 남성, 합장한 상은 여성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한편, 이 마애불에는 고려 때의 조성 연기가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고려 선종(재위 1083~1094)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를 맞이했는데, 역시 후사가 없었다. 그러던 중 궁주의 꿈에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말하기를,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데 지금 매우 시장하다’하였다. 다음날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장지산 아래에 두 개의 큰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고 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왕은 이 바위에 꿈속의 두 도승을 새기게 하고는 절을 지었는데, 마침 그 해에 왕자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이 설화를 고려해 이들 마애불의 제작 시기를 고려 전기인 11세기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암벽 면에서 ‘성화(成化) 7년’의 명문이 발견됨에 따라 조선 초기의 작품일 가능성이 새롭게 제시되었다. 즉 ‘성화 7년’은 1471년(성종 2)에 해당하는데, 이전에는 이 명문을 마애불을 제작할 때 새겨 넣은 것이 아니라 후대인 조선 초기에 기록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명문에 등장하는 추모 대상인 세조 및 그와 연관된 인물들의 능묘가 파주에 많이 분포하고 있어서 마애불을 새롭게 조성할만한 의미가 충분하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아울러 연꽃을 든 마애불이 쓴 둥근 갓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관모로 사용된 것이기에 이들 마애불은 조선 초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마애불의 명문은 모두 세 군데에 분포하는데, 우선 네모난 갓을 쓴 마애불의 바위 측면에 새겨진 명문은 다음과 같다. “성화칠년칠월(成化七年七月), 발원문(發願文), 원차동류견불토불향삼세삼유각(願此同類見佛土不向三世三有閣), 직입서방구품중유타일시성정각(直入西方九品中自他一時成正覺), 우원미륵용화지중류재초회작상지(又願彌勒龍華之中類在初會作上之), 정법정경부인이씨(正法貞敬夫人李氏), 일인유경대비무우대비구니도명(一人有慶大妃無憂大比丘尼道明), 대시주함양군화주혜심(大施主咸陽君化主惠心), 태인군부인이씨(泰仁郡夫人李氏), 양씨(梁氏), 대시주상호군심장기(大施主上護軍沈長己), 김씨(金氏), 통진안씨반남박씨전중흥사주지대사□□근운□혜대사(通津安氏潘南朴氏前中興寺主持大師□□僅雲□惠大師), 부정류안정선한씨(副正柳安㫌善韓氏), 상호군이효지양주(上護軍李孝志兩主), 사직정불중양주(司直鄭仏仲兩主), 충찬위김중산양주(忠贊衛金仲山兩主), 사직허계지양주(司直許継智兩主), 이씨최지(李氏崔知), 정병김덕수양주(正兵金德守兩主), □□한인중양주(□□韓仁重兩主)”. 둥근 갓을 쓴 마애불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있다. “당래미륵여래대성(當來彌勒如來大聖), 세조대왕왕생정토(世祖大王往生淨土)”. 끝으로 네모난 갓을 쓴 마애불 아래의 명문은 다음과 같다. “주상전하수□□(主上殿下壽□□)”.
천연암벽의 자연미를 불상 조각에 적절히 활용해 미적 수준을 높인 작품이다. 바위가 자연적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한 마애불에서는 연꽃 줄기를 잡기 위해 들어 올린 팔의 모습으로 묘사하였고, 다른 마애불에서는 합장한 팔로 응용하였다. 옷자락의 흐름 역시 바위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조각가의 탁월한 선택이 돋보인다. 마치 일부러 조각한 것이 아니라, 원래 바위 속에 있었던 부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더욱 잘 보이게 하려고 표시를 해놓은 듯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