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년(광해군 11) 중국 심하(深河)에서 전쟁이 일어나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요청하자, 조선에서는 강홍립(姜弘立)을 도원수(都元帥), 김경서(金景瑞)를 부원수로 임명하여 출병하였다.
이 때 호역관이던 그는 향도장(嚮導將)으로 출전하여 통사(通事)로서 우리측과 호(胡: 여진족)측의 서신전달의 임무를 주로 담당하였다. 1620년 호서(胡書)를 가지고 경성에 들어온 바 있으며, 1622년 노적(奴賊)에 의해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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