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0년(선조 1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8년에 대성전을, 1622년(광해군 14)에 명륜당을 각각 중건하였다.
그 뒤 1803년(순조 3)에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862년(철종 13)에 진사 손상봉(孫相鳳)이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903년 도유사 김상룡(金象龍), 지현(知縣) 윤규선(尹奎善)이 교궁(校宮)을 중수하였고, 1908년에 도유사 조학기(曺學璣)가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4칸의 전사청(典祀廳), 기물고(器物庫), 각 5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동재와 서재의 위치는 명륜당 앞이어야 하나, 이 향교는 출입도 정면으로 하고 경사가 완만함에도 불구하고 동재와 서재가 명륜당 뒤에 위치하는 특이한 배치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