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4판 2면제. 1946년 3월 25일 박치우(朴致祐)를 발행 겸 편집인으로, 이태준(李泰俊)을 주필로, 이원조(李源朝)를 편집국장으로 하여 서울 중구 황금정(지금의 을지로 2가)에서 창간되었다.
제1차미소공동위원회를 전후하여 좌익계열에서는 언론대공세를 취하였는데, 먼저 수적으로 많은 좌익신문을 확보하는 데 힘썼다. 이를 동원하여 미소공동위원회 개최에 반대한 우익단체의 몰락·거세를 노렸는바 『현대일보』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들 과학자·소설가·시인·문학평론가들이 한데 뭉쳐 신문을 발행한 것은 그 창간사에서 내세웠듯이 ‘자유조선의 소리, 세계민주주의의 전령(傳令), 새나라 건설의 거울’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제 이 신문의 편집경향 및 논조는 그와 반대로 자유와 민주주의에 등을 돌리고, 이른바 진보적 민주주의, 즉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에 현혹되어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상반되는 공산주의집단에 가세하여, 미군정을 비방하고 신탁통치안을 찬성하는 등 좌익활동의 전위노릇을 하였다.
마침내, 1946년 9월 6일 미군헌병의 수색을 당한 뒤 7일자로 「태평양방면 미군사령부 포고 제2호」 위반죄로 무기정간당하였다. 그간 이 신문은 이태준의 「불사조(不死鳥)」를 연재하였고, 시인 김기림(金起林)을 편집고문으로 초빙하기도 하였다.
그뒤 미군정 당국은 이 신문의 발행권을 대한독립청년단의 서상천(徐相天)에게 넘겨 발행하게 하였다. 이때의 사옥은 종로구 낙원동이었으며, 발행부수는 2만 5,000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