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지인 지산동은 ‘원앞’과 ‘삽제(揷提)’ 두 마을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발갱이들’은 지산동 앞의 대단히 넓고 기름진 들판으로, 일명 ‘발검들’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옛날 후삼국시대에 견훤(甄萱)의 아들 신검(神劍)의 군대가 고려를 침공할 당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지산동 앞들에서 신검을 사로잡아 항복을 받았다고 하여 벌검평야(伐劍平野), 즉 ‘발갱이들(발검들)’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농요는 일명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1999년 4월 15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어, 고아읍 문성리 거주 백남진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소리는 모두 10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로부터 구미지역에 전하여오는 「영남아리랑」을 필두로 농군들이 나무할 때나 풀 벨 때 부르던 「어사용」 · 「가래질소리」 · 「망깨소리」 · 「목도소리」 등의 잡역노동요, 농사일을 할 때 부르던 「모찌기소리」 · 「모심기소리」 · 「논매기소리」 · 「타작소리」 등의 농업노동요, 세벌 논매기를 마치고 상머슴을 깽이말(걸채)에 태워서 마을로 흥겹게 돌아올 때에 부르던 「치나칭칭나네」가 전부이다.
「영남아리랑」은 1980년대에 조사 · 발굴된 노래로 예로부터 선산 · 구미지역에 전해오는 아리랑인데, 강원도의 「정선아리랑」과 유사한 선율 형태의 곡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한다. 장단은 엇모리로, 느린 중모리장단의 「한오백년」 및 엮음 형태의 「정선아리랑」과 대조를 이룬다. 한 장단의 넷째마디 음(미)은 장식음을 넣어 가락에 변화를 두는 경우와 한 음으로 지속하는 경우가 있다.
기본 음률은 4·4조로 가사는 다음과 같다. “세월 무정 잘도 흘러 논매기가 닥쳤구나/ 좌우 청산 돌아보니 우리 일꾼 다 모였네/ 만경 벌판 발갱이들을 어느 누가 맡을손가/ 우리 모두 한잔 먹고 호미 들어 시작하세/ 한 가락에 한 호미씩 떠놓고서 돌아보니/ 폭 넓고 새래 긴 논 이럭저럭 줄어가네/ 들머리는 멀어가고 날머리는 다가온다.”
구미 지산동은 약 120가구, 500여명의 주민으로 이루어진 각성촌락(各姓村落)으로 예로부터 공동농경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공동작업에서 불렀던 들소리들을 모아 엮어서 전승하고 있다. 현재는 지산동을 중심으로 들판 주변의 괴평리와 문성리 일대의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민요 보존에 힘쓰고 있다. 지산동 마을 사람들은 들 앞에 이 노래의 유래비(由來碑)를 세우고 구미발갱이들소리보존회를 조직하여 전수 · 전승에 노력하고 있다. 초대회장은 김성수(金聖洙)이고, 현회장은 이승원이다.
이 들소리는 1991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우수상을 받은 바 있어, 전국적으로 이름을 전하고 있다. ‘발갱이들’은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여 민족재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역사적 성지로 일컫는 곳으로, 전통 있는 농요가 이 고장에 전해오는 사실 또한 계속 이어져야 할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