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비봉리 패총은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에 있는 신석기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조개더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배와 신석기시대 편물기술을 보여주는 망태기를 비롯하여 대규모 도토리 저장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신석기문화가 토기와 석기 중심으로 연구되던 관행에서 벗어나 동물유체, 식물유체 등 유기물을 통한 생업이나 고환경, 생태계의 연구와 복원을 추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내륙 지방에서 발견된 최초의 신석기시대 패총 유적으로 신석기시대의 식생과 생활상의 연구에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평가된다.
2007년 8월 2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보호구역은 4,183㎡이며, 창녕군이 소유 및 관리한다. 이 유적은 2004년에 양배수장부지 신축공사 시행 중 저습지에서 패각층과 함께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 무문토기(無文土器) · 각종 유기물 등이 출토되면서 알려졌다. 이 유적은 밀양시 청도면에서 발원한 청도천과 낙동강과 합류하는 넓은 습지에 위치하고 있다. 뒤쪽으로는 월봉산(해발 401.2m)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경사면에는 작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국립김해박물관에 의하여 2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유적의 성격이 밝혀지게 되었다. 1차 조사는 2004년 6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실시되었고, 2차 조사는 2004년 11월 30일부터 2005년 8월 23일까지 진행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신석기시대의 소토유구(燒土遺構) 7개소, 야외노지(野外爐址) 6개소, 주거지 2개소, 도토리 저장공(貯藏孔) 16개소가 포함된 문화층과 재첩류를 중심으로 하는 다섯층의 패각층(貝殼層)이 중복되어 있었다.
신석기시대 출토유물로는 서기전 6,0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환목주(丸木舟)와 망태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토기류 및 석기류와 동물유체(사슴뼈 · 재첩 · 굴 · 꼬막 · 멧돼지뼈 · 개뼈 · 잉어 등), 식물유체(도토리 · 가래 · 솔방울 · 조 · 각종 씨앗류 등) 등이 있다. 이외에 청동기시대 유물로는 무문토기,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토제 어망추가 있다.
비봉리 패총은 발굴조사에서 7개 지점을 조사하였는데, 모두 45개의 층위가 확인되었다. 산지 쪽에서는 기저력층과 암반이 노출되었다. 110층은 근대의 경작층과 청동기시대 이후의 호소성 퇴적층, 1118층은 자갈이 다량으로 포함된 역석층, 19층에서부터 45층까지는 실트와 모래층이 두텁게 퇴적된 토층이다. 이중에서 31층은 제2패각층과 제2부석층에 해당되는 층으로 신석기시대 조기에 형성되었다.
비봉리 패총에서 조사된 저장공은 모두 18개소가 발견되었다. 저장공은 길이는 52~216cm로 상당히 다양한 반면, 단면 형태는 U자형이거나 플라스크형을 하고 있다. 저장공은 도토리를 저장하던 시설로 판단된다. 이 유적에서는 해수면 변동에 의하여 습지화된 환경에서 나무 · 풀 등을 포함한 유기물(동물뼈, 식물유체, 씨앗류 등) 등이 다량으로 수습되었는데, 특히 시기를 달리하는 도토리 저장시설은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열을 이루고 있다.
도토리 저장시설은 단순하게 도토리를 저장하기 위한 공간뿐만 아니라 도토리의 타닌을 제거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저장시설 내부에서 갈돌과 갈판이 출토되어 도토리를 가공하는 기능도 한 것으로 보인다. 도토리 이외에 가래, 솔방울, 조개에 대한 채집, 바다생물 · 잉어에 대한 어로, 사슴 · 멧돼지에 대한 사냥, 개에 대한 가축 사육의 구체적인 증거들도 검출되었다.
이외에도 망태기, 검형 목제품(劍形 木製品), 분석(糞石), 동물그림, 배 등을 들 수 있다. 망태기는 두 가닥의 날줄로 씨줄을 꼬는 '꼬아뜨기 기법'으로 만든 것으로 신석기시대의 편물기술(編物技術)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검형 목제품은 신부(身部)만 잔존하고 있는데, 전면을 잘 다듬어 제작한 목기이다. 분석(糞石)은 당시 신석기인들의 먹을거리는 물론 기생충까지도 확인할 수 있는 고고학적 시료이다.
신석기시대 조기에 해당하는 제2부석층에서 출토된 토기편에는 동물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동물 형태는 물고기에 가까우나 등 부분에 돌기가 나 있고, 두 개의 다리가 표현되어 네 발 짐승인 멧돼지로 추정된다. 특히 머리 쪽에는 눈 혹은 코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 두 점이 찍혀 있고, 몸체에는 엷은 문살무늬가 채워져 있다. 그리고 소나무를 단면 U자형으로 파내어 만든 환목주(丸木舟)가 제2 피트 제5패층 아래에서 출토되었다.
남해안의 신석기문화는 조기 · 전기 · 중기 · 후기 · 만기로 구분하는데, 비봉리 패총은 신석기 모든 기간의 패총이 온전하게 잘 남아 있다. 각 층에서 출토된 토기를 중심으로 하여 유적의 연대를 설정할 수 있다.
남해안 신석기시대 토기는 ‘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 · 주칠토기(朱漆土器) →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 : 덧무늬토기) → 압인문토기(押印文土器 : 눌러찍기무늬토기) → 태선침선문토기(太線沈線文土器: 굵은새김무늬토기) →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 : 겹아가리토기)’로 변화되는데, 이런 양상은 비봉리 패총의 5개 패각 층위의 양상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패총에 포함된 목탄, 도토리, 목재, 패각, 가래에서 채취한 시료에 대한 AMS(가속질량분석기) 측정 결과도 서기전 5,700~1,890년으로 검출되었다.
신석기시대 조기(전반)는 제35패층인 ⅥⅩ 문화층으로 주칠토기와 말각평저(抹角平底)의 발형토기(鉢形土器)와 호형토기, 평행융기대문(平行隆起帶文) · 융기선문토기(隆起線文土器), 구순각목점열문토기(口脣刻目點列文土器)가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전기(후반)는 제1패층이 포함된 Ⅲ~Ⅴ문화층으로 압인문토기 · 단사선문토기(短斜線文土器)가 성행하였고, 중 · 소형의 호형토기와 대형 원저(圓底) 발형토기도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며, 인부타제편인석부(刃部打製偏人石斧) 등 다양한 형태의 석부가 제작되었다.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는 Ⅱ문화층으로 태선침선문토기와 이중구연토기가 주로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는 태선침선문토기 · 이중구연토기 등과 함께 무문토기가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신석기시대 조기에서 전기(7,700 B.P. ~ 3,500 B.P.), 신석기시대 중기와 후 · 만기, 그리고 청동기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조성되었다.
비봉리 패총은 신석기 문화가 토기와 석기 중심으로 연구되던 관행에서 벗어나 유기물을 통한 생업이나 고환경, 생태계의 연구와 복원을 추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유적이다. 비봉리 패총은 모두 10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신석기시대 조기와 전기의 각 문화층 사이에는 상대적 서열을 분명하게 구분해 주는 간층(間層)이 존재하였다.
따라서 층위의 역전 현상으로 시기를 달리하는 문화층이 혼재되어 편년에 어려움을 겪었던 다른 패총유적의 편년을 검토하고 남해안 일대 신석기시대 유적 편년의 표준으로 삼을 수 있다. 또한 규조분석 결과와 도토리 저장공의 위치 등을 통하여 후빙기(Holocene)의 어느 시점이나 적어도 신석기시대에는 낙동강 중 · 하류 혹은 그 지류인 현재의 창녕, 밀양 지역까지 바닷물의 직 ·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을 확인하여 신석기시대 해면 변동을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비봉리 패총은 내륙 지방에서 발견된 최초의 신석기시대 패총 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배와 신석기시대 편물기술을 보여주는 망태기를 비롯하여 대규모 도토리 저장시설 등이 확인되어 신석기시대의 식생과 생활상의 연구에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