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전쟁(麗唐戰爭)
그러한 가운데 665년에 연개소문이 죽자, 곧 이어 그의 아들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실각한 남생(男生)은 국내성(國內城)으로 가서 그 아들을 보내 당에 투항하였다. 연개소문의 동생인 연정토(淵淨土)는 12성을 들어 신라에 항복하였다. 이런 내분을 포착하여 당은 대규모 원정군을 보냈고, 남생은 국내성 일대의 병력을 끌고 당군 진영으로 가서 향도(嚮導: 길을 인도하는 역할) 노릇을 하였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피폐한 상태에서 이렇듯 최고집권층 내의 분쟁과 반역 행위가 일어나자 고구려의 저항력은 급속히 무너졌다. 요동의 신성(新城)과 부여성이 함락된 데 이어, 마침내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645년부터 시작된 여당전쟁은 668년 결국 고구려의 멸망으로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