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련(趙璉)
또한, 원나라로부터 중의대부 고려왕부단사관(中議大夫高麗王府斷事官)의 직임을 받았는데, 이는 조인규가 지녔던 것을 물려받은 셈이며, 따라서 고려에서의 정치적 지위를 굳히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심왕 왕고(瀋王 王暠)가 고려 왕위를 넘보는 일로 원나라에 불려가서 국왕인(國王印)을 빼앗기는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충숙왕이 원나라의 명령에 의하여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권성사(權省事)가 되어 왕의 직무를 대행한 바 있다. 충숙왕과 심왕의 싸움이 결말을 보기 전인 1322년에 죽었지만, 동생 조연수(趙延壽)와 함께 심왕의 편을 들어 절개를 잃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 『고려사(高麗史)』 - 「조인규와 그의 가문」(민현구, 『진단학보』42·43, 1976·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