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애(李信愛)
같은해 5월 혈성부인회(血誠婦人會) 간부에 취임, 장선희(張善禧)와 더불어 상해임시정부 군자금모금에 주력하였다. 한편, 대동단(大同團)에 입단, 『대동신보(大同申報)』 간행을 보조하였으며, 같은해 11월 단장 전협(全協)의 지시로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의 상해망명을 주선하였으나, 12월 기밀이 누설되어 대동단 동지 4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미결수로 서대문형무소에 복역중 1920년 3월 유관순(柳寬順)과 3·1운동 1주년기념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하여 유방파열의 고문을 받았으며, 징역 5년 구형, 징역 4년 선고를 받고 3년 8개월 복역 끝에 출감하였다. 1945년 공주에서 한국부인회(韓國婦人會)를 조직하였고, 1947년부터 11년간 부녀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