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가례도감에서 조선의 국왕과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가례에 관한 사실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의궤.
개설
서지적 사항
구체적인 사항을 보면, 1627년에 있었던 소현세자와 강빈의 가례, 1638년(인조 16)에 있었던 인조와 장렬왕후의 가례, 1651년(효종 2)에 있었던 현종과 명성왕후의 가례, 1671년(현종 12)에 있었던 숙종과 인경왕후의 가례, 1681년(숙종 7)에 있었던 숙종과 인현왕후의 가례, 1696년(숙종 22)에 있었던 경종과 단의왕후의 가례, 1702년(숙종 28)에 있었던 숙종과 인원왕후의 가례, 1718년(숙종 44)에 있었던 경종과 선의왕후의 가례, 1727년(영조 3)에 있었던 진종과 효순왕후의 가례, 1744년(영조 20)에 있었던 장조와 헌경왕후의 가례를 기록한 의궤가 있다. 이때까지의 의궤는 모두 1책이며, 반차도(班次圖)의 면수는 8~19면이다.
또한 1759년에 있었던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 1762년(영조 38)에 있었던 정조와 효의왕후의 가례, 1802년(순조 2)에 있었던 순조와 순원왕후의 가례, 1819년(순조 19)에 있었던 문조와 신정왕후의 가례, 1837년(헌종 3)에 있었던 헌종과 효현왕후의 가례, 1844년(헌종 10)에 있었던 헌종과 효정왕후의 가례, 1851년(철종 2)에 있었던 철종과 철인왕후의 가례, 1866년(고종 3)에 있었던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1882년(고종 19)에 있었던 순종과 순명황후의 가례, 1906년에 있었던 순종과 순정황후의 가례를 기록한 의궤가 있다. 이상의 의궤는 1844년의 의궤를 제외하면 모두 2책이며, 반차도의 면수는 18~92면이다. 1759년 이후 가례도감의궤의 분량과 반차도 면수가 늘어났다.
내용
도청의궤에는 가례도감의 인원 구성을 보여 주는 좌목(座目), 행사 진행 일자, 국왕의 명령인 전교(傳敎), 신하들이 국왕에게 행사 진행 사항을 보고하는 계사(啓辭), 실무 관청에서 가례에 필요한 인원과 물품을 동원하는 내용을 보여 주는 문서인 품목(稟目)·이문(移文)·감결(甘結), 행사에 참여한 유공자에게 상을 주는 상전(賞典), 의궤 제작 사실을 밝히는 의궤 사목(儀軌事目) 등이 있다.
각방 의궤는 각 방에서 진행한 업무를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는 각 방에 소속된 인원의 명단과 소요 물품이 상세히 나타나며, 문서 중에서는 품목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일방 의궤에는 교명(敎命), 의복, 상석(床席), 병풍, 체발(髢髮, 가발) 등의 제작, 가례 행사의 의례 절차를 밝힌 의주(儀註)가 있다. 이방 의궤에는 가례에 필요한 가마와 의장(儀仗)의 제작, 삼방 의궤에는 책(冊)과 보인(寶印)의 제작, 별공작 의궤에는 별궁과 동뢰연(同牢宴) 등에 필요한 상(床)과 장식품의 제작, 수리소 의궤에는 다리나 임시 가옥의 조성에 관한 기록이 있다. 친영(親迎) 반차도는 일방 의궤의 끝이나 의궤의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규장각소장 의궤 해제집』 3(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신병주, 효형출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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