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례도감의궤 ()

가례도감의궤 중 표지
가례도감의궤 중 표지
유교
문헌
조선전기 가례도감에서 조선의 국왕과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가례에 관한 사실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의궤.
정의
조선전기 가례도감에서 조선의 국왕과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가례에 관한 사실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의궤.
개설

조선 왕실의 가례를 위해 가례도감(嘉禮都監)을 설치한 것은 1397년(태조 6)부터 나타나므로,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도 조선 전기부터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는 1627년(인조 5) 소현세자와 강빈(姜嬪)의 가례에서부터 1906년(고종 33) 순종과 순정황후의 가례까지 총 20종의 의궤가 남아 있다. 이 중에서 왕세자의 가례는 11종, 국왕의 가례는 9종이다. 의궤의 분량은 초기에는 1책이었지만, 1759년(영조 35) 영조의 가례 이후 2책으로 늘어났다. 영조 대에는 『국혼정례(國婚定例)』와 『상방정례(尙方定例)』가 작성되면서 가례 절차가 정비되었고, 의궤의 기록도 더욱 정밀해지고 체계화되었다.

서지적 사항

현재 가례도감의궤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체적인 사항을 보면, 1627년에 있었던 소현세자와 강빈의 가례, 1638년(인조 16)에 있었던 인조와 장렬왕후의 가례, 1651년(효종 2)에 있었던 현종과 명성왕후의 가례, 1671년(현종 12)에 있었던 숙종과 인경왕후의 가례, 1681년(숙종 7)에 있었던 숙종과 인현왕후의 가례, 1696년(숙종 22)에 있었던 경종과 단의왕후의 가례, 1702년(숙종 28)에 있었던 숙종과 인원왕후의 가례, 1718년(숙종 44)에 있었던 경종과 선의왕후의 가례, 1727년(영조 3)에 있었던 진종과 효순왕후의 가례, 1744년(영조 20)에 있었던 장조와 헌경왕후의 가례를 기록한 의궤가 있다. 이때까지의 의궤는 모두 1책이며, 반차도(班次圖)의 면수는 8~19면이다.

또한 1759년에 있었던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 1762년(영조 38)에 있었던 정조와 효의왕후의 가례, 1802년(순조 2)에 있었던 순조와 순원왕후의 가례, 1819년(순조 19)에 있었던 문조와 신정왕후의 가례, 1837년(헌종 3)에 있었던 헌종과 효현왕후의 가례, 1844년(헌종 10)에 있었던 헌종과 효정왕후의 가례, 1851년(철종 2)에 있었던 철종과 철인왕후의 가례, 1866년(고종 3)에 있었던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1882년(고종 19)에 있었던 순종과 순명황후의 가례, 1906년에 있었던 순종과 순정황후의 가례를 기록한 의궤가 있다. 이상의 의궤는 1844년의 의궤를 제외하면 모두 2책이며, 반차도의 면수는 18~92면이다. 1759년 이후 가례도감의궤의 분량과 반차도 면수가 늘어났다.

내용

가례도감의궤의 내용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도청의궤(都廳儀軌)와 각방(各房) 의궤로 구성된다. 각방 의궤는 일방(一房) 의궤, 이방 의궤, 삼방 의궤, 별공작(別工作) 의궤, 수리소 의궤 등으로 구분된다.

도청의궤에는 가례도감의 인원 구성을 보여 주는 좌목(座目), 행사 진행 일자, 국왕의 명령인 전교(傳敎), 신하들이 국왕에게 행사 진행 사항을 보고하는 계사(啓辭), 실무 관청에서 가례에 필요한 인원과 물품을 동원하는 내용을 보여 주는 문서인 품목(稟目)·이문(移文)·감결(甘結), 행사에 참여한 유공자에게 상을 주는 상전(賞典), 의궤 제작 사실을 밝히는 의궤 사목(儀軌事目) 등이 있다.

각방 의궤는 각 방에서 진행한 업무를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는 각 방에 소속된 인원의 명단과 소요 물품이 상세히 나타나며, 문서 중에서는 품목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일방 의궤에는 교명(敎命), 의복, 상석(床席), 병풍, 체발(髢髮, 가발) 등의 제작, 가례 행사의 의례 절차를 밝힌 의주(儀註)가 있다. 이방 의궤에는 가례에 필요한 가마와 의장(儀仗)의 제작, 삼방 의궤에는 책(冊)과 보인(寶印)의 제작, 별공작 의궤에는 별궁과 동뢰연(同牢宴) 등에 필요한 상(床)과 장식품의 제작, 수리소 의궤에는 다리나 임시 가옥의 조성에 관한 기록이 있다. 친영(親迎) 반차도는 일방 의궤의 끝이나 의궤의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다.

의의와 평가

가례도감의궤는 조선 왕실을 구성하는 주인공들의 혼례 과정을 그림과 문자로 상세히 정리해 놓았다는 점에서 기록적 가치가 크다. 가례도감의궤의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국왕이나 왕세자가 별궁으로 가서 왕비나 왕세자빈을 맞이하여 궁으로 돌아오는 행렬을 그린 친영 반차도이다. 이와 별도로 왕자(王子)와 왕녀(王女)의 가례에 대해서는 의궤가 아니라 등록(謄錄)이 남아 있다. 가례 등록은 현재 16종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규장각소장 의궤 해제집』 3(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신병주, 효형출판, 2001)
집필자
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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