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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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경주 기림사 주지, 대선사 등을 역임한 승려.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경주 기림사 주지|대선사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상영
  • 최종수정 2023년 0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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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경주 기림사 주지, 대선사 등을 역임한 승려.

생애

자세한 생애는 알 수 없으나, 13세기 중 · 후반에 걸쳐 활동한 내용이 일부 전한다. 1258년(고종 45)에는 경주기림사(祇林寺) 주지로 있었으며, 대선사(大禪師)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종 또는 천태종(天台宗) 소속의 승려였던 것 같다.

그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내용이 전부인데, 권3 「탑상」편의 ‘낙산2대성’조와 ‘전후소장사리’조 두 곳에 실려 있다.

‘낙산2대성’조에 실려 있는 내용은 신라 의상이 낙산사(洛山寺)에 간직해 두었던 보주(寶珠)가 몽고군의 침입으로 위험에 처하게 되자 1258년 각유가 왕실에서 그것을 직접 간직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전후소장사리’조에는 고려 예종(睿宗) 때 전래된 불아(佛牙)가 중간에 분실되었다가 다시 봉안되는 과정을 각유가 이야기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특히 이 내용의 뒤에는 ‘전 기림사 대선사 각유가 친히 목격한 바를 이야기하여 내가 기록하게 된 것이다’는 일연(一然)의 기록이 있어 『삼국유사』 저자 일연과의 상관성도 함께 살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 『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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