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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면 · 호소 등의 간석지 수면에 방조제를 축조하여 내측의 매립지를 간척하여 조성한 토지를 대상으로 영농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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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면 · 호소 등의 간석지 수면에 방조제를 축조하여 내측의 매립지를 간척하여 조성한 토지를 대상으로 영농하는 마을.
내용 및 특징

간척촌이 간척지를 대상으로 그 토지를 이용하여 자원을 생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형성한 취락이므로 새로 얻어진 토지를 이용하는 방법에 따라 농경지개간, 염전개발, 양식양어장, 공업용지개발, 주택단지개발, 항만개발, 공항개발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된다.

간척촌의 가장 현저한 형태는 간척지를 개답하여 새로운 농경지를 영농하는 것이다. 간척촌 발달의 전제는 간척 사업의 대상이 되는 넓은 간석지가 발달해야 한다는 점과 여기에 풍부한 농업 용수와 생활 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수원을 인근 지역에서 확보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간척촌의 성립과 발달은 이런 전제 조건이 충족될 수 있는 해안간석지에서 이루어진다. 국내의 기존 간척지들은 대부분 농경지 개발 대상지로 개간되고 있다.

앞으로 완공될 새만금간척지개발지구는 그 개간 면적이 광대할 뿐만 아니라 그 경제적 이용도도 농경지개간, 염전개발, 양식양어장개발, 공업용지개발, 항만개발, 도시용지개발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최근에는 환경친화적인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롯테르담, 일본의 오사카는 간척지의 개발로 발달한 항만 지역이고, 서울의 신공항으로 개발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은 공항 개발을 목표로 한 간석지 개발에 해당한다.

해안간석지는 모든 해안에서 다 발달하는 것은 아니며 하천을 통하여 외해로 운반된 물질이 조수 현상으로 다시 해안으로 재운반, 퇴적되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체로 하천 하구 일대에 발달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현저하게 간석지가 발달되어 있는 곳은 다음 지역들이다. 서해안의 동진강·금강, 만경강 하구 일대, 삽교천, 안성천 유역의 아산만 일대, 남양만 일대, 한강 하구 일대, 임진강, 예성강 하구 일대, 재령강·대동강 하구 일대에 가장 현저하게 발달하고 있다.

그리고 간석지를 개간하여 영농하는 간척촌의 발달도 이들 하천 하구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여 발달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은 3개의 하천 입구가 모여 삼각강을 이루어 서해로 흘러드는 금강·만경강·동진강 하구이다. 이 곳은 전라북도 군산시·김제시·부안군의 해안과 하구 연안 일대에 넓은 간석지를 형성하고 있다.

간석지를 대상으로 한 간척 사업은 하구 연안에 연하여 인공적으로 방조제를 축조하고 그 내측의 매립지에 대하여 매립공사, 개답공사, 수로공사, 취락조성공사를 계획적으로 시행해야 하므로 막대한 노동력·자본·토목기술의 투하가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간척사업 지대에서는 선자본이동(先資本移動), 후인구이동(後人口移動)의 이동 현상이 일어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역할 수행 능력을 보유한 개척 주체가 등장하게 된다. 대자본과 기술, 노동력 동원 능력을 가진 주식회사급의 주체나 국가정부 공공기관이 개척 주체가 된다.

대체로 해안 간척지들은 해안 말단의 한계 지역에 입지하는 경우가 많아 기존의 시장경제체계와는 거리가 멀어 고립 상태에 있던 지역이다. 그러므로 이의 개발을 위해서는 사회 간접 자본의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농경지로 개간하는 경우 인근에서 농업 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수원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내륙 산간 계곡에 거대한 저수지를 축조하고 거기에 보수된 물을 농업 용수로 공급할 수 있는 대규모 관개 수로망을 구축하여야 한다. 그리고 해안에 양수저수지가 축조되는 사례가 많다.

대규모 수리조합형 수리 체계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막대한 자본의 수요가 발생한다. 이런 대규모의 수리 시설이 전라북도농지개량조합·동진농지개량조합·예당농지개량조합 등 대규모 수리조합 형태로 발달하는 것이다.

간척촌의 역사

간척촌은 개간기부터 해안의 원초 경관에 대하여 계획적이고 인위적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척 주체가 지닌 개발 계획과 개척 의지가 개간되는 지표 공간상에 크게 반영되어 나타나게 되고, 그들이 지닌 문화 요소가 반영된 문화 경관이 각인되어 나타나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전라북도 옥구군(지금의 군산시) 금강 하구 미면간척지에 형성된 간척촌은 그러한 예이다. 즉, 당시의 개척 주체인 불이흥업주식회사(흔히 不二農場이라 함.)에 의하여 이 간척 공간상에 신일본 이상촌 건설을 표방하여 개척하였다. 그래서 개척 주체인 불이흥업주식회사의 개척 의도와 계획이 공간상에 투영되었다.

또한 취락 구조, 가옥 구조와 형태, 경지 형태에 일본 문화 요소가 강하게 부각되었음을 볼 수 있다. 간척 사업은 고려조에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에 천도했을 당시 육지의 봉쇄로 인한 식량 조달의 어려움으로 강화도 해안에 대한 간척이 이루어 졌던 사실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서해안 해안 지방에서는 규모는 작으나 간척 사업이 행해졌던 것을 볼 수 있다. 영조 때까지도 기중법을 이용한 공사 진행은 일반화되지 못하였고, 해안 개펄 위를 판자법을 이용하여 제방 축조에 필요한 돌을 운반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다 대규모 방조제 공사에는 기술적으로 미진했던 것 같다.

따라서 당시의 방조 시설 기술이 취약하여 홍수나 해일 때마다 자연 재해를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조정에 계고되었던 실록의 홍수 피해 기록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조선 말기에 만경강 하류에 민영익제(閔泳翊堤), 이완용제(李完用堤) 등의 방조제를 설치하였던 유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한말에도 소규모의 간척 사업이 꾸준히 행해졌던 것으로 보이나 당시 간척촌의 유구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본격적인 간척촌의 개척은 훨씬 뒤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근대적 간척촌의 성립은 1920년대 이후 일제 식민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한 산미증산정책과 토지개량사업의 일환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1920년대는 대규모 토목 공사를 시행할 수 있는 자본과 기술이 이 때에 와서야 이를 뒷받침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최초의 대간척 사업은 1920년대 미면간척사업이다.

일인 불이흥업주식회사가 옥구 반도 북단과 남단의 간석지를 대상으로 해안에 약 14km 연장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2,500ha의 간척지를 개답하여 취락을 조성한 것이다. 이주민들은 일본 각 부현에서 모집된 농업 이민들로 채워졌고 넓은 간척지는 농장의 주도로 측량에 의한 장방형 농토를 구획하여 25년의 상환 조건으로 농민들에게 배분되었다.

이 장방형 농토를 따라 수로와 농로를 설치하고 수로변을 따라서 10동씩 같은 대지, 같은 형태, 같은 재료, 같은 규격, 같은 간격을 가진 일식와가(日式瓦家)를 신축하여 모집 이민을 입주시켰다. 이들 취락들은 개간지 곳곳에 기반목상의 열촌 형태로 배치되어 정규형의 공간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공간 구조는 전래의 토착 문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수로와 농로변을 따라 열촌 취락을 입지 시킨 것은 수로의 물을 생활 용수로 사용하고 농경지변에 입지하여 노동력 구사에도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또한 농장측의 관리면에도 유리하도록 배려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신축된 일식와가는 일자삼간형(一字三間型) 직가(直家)로 남향하여 주방·온돌방·다다미방을 배열한 가옥인데, 일식 가옥에 온돌방을 설치한 것은 불순한 겨울 기후를 극복하기 위한 현지 문화의 차용으로 이해된다.

농가 부대 시설이 증축되기 전에는 미곡 생산을 주기능으로 하는 이 공간에 단순한 일자직가를 신축 배치한 것으로 보아 가옥이 단순한 거처로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입식된 모집 이민은 일본 내 각지 부현의 모범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부현별 지연 공동체적인 동향인 취락을 조성하여 야마구치촌(山口村)·야마가다촌(山形村)·구마모도촌(熊本村)·니이가다촌(新瀉村) 등으로 고향의 부현명을 간척촌명에 붙였다.

농로는 15자 폭을 가진 규모로 설치하여 전 공간을 교통할 수 있게 시설하였다. 이는 우마차나 농기계의 사용을 전제로 한 공간 구조를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하고 현재도 이곳을 열대자라 불러 별도의 지명화하여 부르고 있다.

가옥도 당시의 기준으로는 농촌 가옥치고는 문화 주택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 간척 공간은 질서정연한 장방형 농토와 수로와 농로변을 연이은 열촌 취락으로 인공적이고 합리적인 I-IT적 경관을 가지게 되었다.

1924년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반도 남단 동진강 하구 일대의 간석지를 일본인의 자본과 기술, 노동력 동원으로 동진농업주식회사(東津農場이라 함.)에 의하여 간척지가 개발되어 개간된 토지에 한국인 농업 이민 650여 호를 입식시켜 간척촌을 조성하였다.

이 간척공간은 모두 동진농장이라는 단일 농장 체제 속에 귀속되어 농장의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위농장 체제로 운영되었다.

수로와 도로변을 따라 6동∼10동씩으로 된 바둑판 모양의 열촌 취락을 조성하였으나 가옥은 모두 일자이간형(一字二間型)의 원시적인 초가를 신축하고 입식하는 원주민 농민들에게 배분되었다. 가옥 구조에서 특기할 것은 해변의 강풍을 의식한 방풍 시설이 채광 시설보다는 우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복 이후 이들 간석지에 대한 간척 사업에 박차를 가하여 당시 옥구군 회현면 만경강 하구 일대에 간척촌이 형성되었다. 1960년대에는 부안군 계화도 일대 간석지에 간척 사업이 진행되어 국내 최대의 간척지가 조성되었다.

여기의 간척촌들은 열촌 형태가 아닌 기존의 해안 어촌들에 도시형 주택 단지를 조성하였다. 그러므로 간척지와 농가들은 유리되어 거리 마찰에서 오는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창북리·돈지리(의복리)·계화리 등의 기존 어촌에 15평형 조립식 주택과 18평형 와가로 된 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총 1,000동의 가옥을 3곳에 분산 집단화 시켰다. 그 외에도 영산강유역과 태안반도·천수만·아산만·남양만 일대의 간석지를 개발하는 간척 사업이 진행되어 간척촌의 개발이 서해안 일대의 간석지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원래 간척지(매립지)는 바다·호소·하천변의 배후습지 따위를 매립하여 획득하는 토지로 대부분 한 국가의 영토에 속하는 공유수면에 형성되고, 간척 사업과 매립 공사는 모두 공유수면의 간석지가 매립 대상이 된다.

일본에서는 공유수면매립법(1921년)에 의하여 시행되고 있으며 대부분 서해안의 간척지들도 일제시에 이 법률에 따라 시행되었다.

매립은 국가 기관의 매립 허가를 필요로 한다. 또한 이는 수면에 대한 권리자(어업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새만금간척사업이나 시화호(始華湖)주변에서 많은 쟁의가 발생하는 하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국가 기관은 면허와 관계되어 면허료를 징수할 수 있다.

일본에서 제2차대전 후에 고도 성장의 물결을 타고 국내 각지, 특히 내만 지역의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임해공업단지를 조성한 바 있는데, 그 결과 자연 환경 파괴라는 비판의 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시화호 주변의 해양 환경 파괴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새만금간척사업지대에서 해양환경파괴 문제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흔히 해안에서 해면 이하 해발 0m 이하의 토지를 해면이하지역이라 하는데, 세계적으로는 카스피해(호면고도 -28m) 주변의 광대한 지역, 사해(호면고도 -392m) 주변, 네덜란드의 자이델(Zuyder)해 주변에는 해면이하지역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국토 총면적의 25%가 해면이하지역이다.

이 지역에 대한 개간은 로마시대 이후 꾸준히 시행되어 와서 최근에는 발달된 기술을 이용한 간척 사업으로 개간된 매립지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해면이하지역을 지반침하지역의 대명사로 인식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동경(東京)해면이하지역(38㎢), 중경(中京)해면이하지역(185㎢), 한신(阪神)해면이하지역(80㎢)에 달한다.

이들 지역은 해안의 조수 고조 때에 위험에 노출되곤 하는 지역으로 피해를 받아오고 있는 지역이다. 태풍 시기에 그 피해는 심각하다. 방조제를 축조한 이들 해면이하지역의 간척 사업은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낙동강 범람원의 일부인 창녕부근 우포 배후습지의 간척 사업이 거론되고 있다.

간척촌 개발의 예로 네덜란드의 폴더(polder)는 잘 알려져 있다. 제방으로 둘러싸인 해안저지를 말하는데, 해면 이하의 토지가 넓은 네덜란드에서는 국토의 2/5가 해안제방으로 둘러쳐져 있고 그 내측에 간척 사업에 의한 폴더가 형성되어 있다. 간척과 배수의 역사는 네덜란드 국토 개발사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

폴더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해면 이하의 저지에 높이 수 m의 해안 방조제를 수축하여 그 내측을 간척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천 양안의 범람저지를 간척하기 위한 것이다. 전자는 최근에 간척된 위어링거미어(wieringermeer)해 폴더와 같이 해면 이하 5∼6m의 폴더가 그것이다.

이에 대하여 마아르강·아이야르강의 간척지처럼 해면상에 있는 하천에서도 홍수 수위 이하의 저지에서는 홍수 때에 이를 막는 제방이 있고 그 양측에 발달한 간척지가 있다. 폴더는 로마 시대 이래 건설되어 현재와 같은 광활한 간척지 개간은 중세 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폴더의 배수를 위한 풍차(風車)는 15세기에 처음 생겨 전 국토에 널리 확산되어 네덜란드 특유의 경관을 이루어왔다. 19세기에 들어 풍차는 점차 증기펌푸로 교체되어 현재는 관광 자원화 되어가고 있다. 오늘날에는 디젤펌프·전동펌프에 의하여 양·배수를 하는 수위관리소가 각지에 분포하게 되었다.

폴더에는 많은 배수로가 통하여 이들 배수로는 유람선이나 화물선의 수운에도 이용되어 운하로서의 구실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간척 사업은 자이델해의 간척 사업인데, 1918년에 착공하여 1932년에 북해방조제가 완공되었다.

자이델해는 담수화되어 아이야르호가 조성되고 주변에 5군데의 대규모 폴더가 형성되어 화초 재배 단지나 목초지로 이용되고 있다. 간척촌은 배수로를 따라서 열촌 형태를 형성하여 발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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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의 한국지리』(남궁봉, 교학사, 1993)
『지리학사전(개정판)』(정장호 편저, 우성문화사, 1993)
『취락지리학』(오홍석, 교학사, 1980)
「하천유역일대 간석지상의 간척취락 유형에 관한 연구 -만경강 동진강유역을 사례지역으로-」(남궁봉,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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