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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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지대나 황무지를 개간하고 간척하여 경지를 조성하고 그곳에 입지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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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산림지대나 황무지를 개간하고 간척하여 경지를 조성하고 그곳에 입지하는 마을.
내용

넓은 의미로는 해면이나 소택지(沼澤地: 늪과 못이 많은 땅)를 간척하기 위한 간척촌까지도 포함된다. 기존의 경지가 농업 인구의 증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협소해지게 되면, 기존의 경지 주변 지역과 원격 지역까지 개간하여 이주, 정착하게 되는 취락이 발달하게 된다.

이는 오랜 역사를 두고 어느 지역이 개간되어 가는 개간 과정에서 어디에서나 관찰하게 되는 취락이다. 경지 확장과 토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에서 당시의 정책이나 경제적 사정에 따라 개간이 행하여지게 된다. 역사와 더불어 국내에서도 산림지대와 황무지를 대상으로 한 개척촌의 개발이 각 시대마다 이루어져 왔다.

산간분지나 산간산록사면에서의 한전(旱田) 개발과 지류곡지의 충적지로 향한 수전(水田)의 개척을 중심으로 개척이 이루어졌다. 조선 초기에 이르러 여진을 물리치고 관북, 관서 지방이 개척됨에 따라 삼남 지방의 민호들을 이주시켰다든가, 개마고원 개발, 두만강 하류의 배후습지 개간과 방어를 위하여 육진을 설치하여 둔전병제도를 시행하였다든가, 영남로·호남로변의 역원취락 주변의 개발, 종교적 피난처로서의 신앙취락 개척 같은 것들이 그런 예이다.

최근에도 미수복 지구 개발, 산지의 한계 자원 개발을 위한 광양·수안·재령·은률·봉산·무산·개천·강서·대보·운산·상동·태백 등의 광산촌, 임산촌 개발, 해안간석지 개발, 야산 개발, 피난민 정착용 농장 개발, 과수원 개발, 산지목장 개발, 고랭지채소 재배지 개발, 음성나환자촌 개발, 댐건설 지역의 수몰민 정착용 경지 개발 등 특수 목적 달성을 위한 개척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그 때마다의 경제적 목표와 사회적 목표 달성을 위하여 그 개척 대상지는 다양하게 변화하여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각지에 신촌(新村)·신평(新坪) 등 새로울 신(新)자가 붙은 지명이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개척 개간된 경지를 중심으로 발달한 취락들이다.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신(新)자가 붙은 지명, 불모지로 버려진 삭은 땅을 개간하였다는 사근(沙斤), 열 개(開)자가 붙은 개정(開井)·개평(開坪) 등의 지명, 농막(農幕)·산막(山幕)·판막(板幕) 등 막(幕)자가 붙은 지명, 황무지를 의미하는 노(蘆)·조(鳥)·갈(葛)·모(茅)·애(艾) 등 ‘새’, ‘독새’ 등으로 훈이 같은 글자가 붙은 지명 등은 개척촌임을 알게 해준다.

또한 불모지를 의미하는 불모(拂母)·불모(不毛)가 불무·풀무로 음변하여 야(冶)자로 차용된 지명 등도 모두 개척촌임을 의미하는 지명으로 쓰이고 있어 그 취락 발달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관북 지방이나 관서 지방과 같이 늦게 개척된 지방에는 발흥하라는 뜻의 운(雲)·흥(興)·풍(豊)·용(龍)·덕(德)자 지명이 많고, 개마고원이나 서산 지방 일대의 개척촌들은 개간지에 가옥이 따로 떨어져 산촌(散村)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아, 지명도 박가촌(朴哥村)·최가촌(崔哥村) 등으로 그곳을 개척해 살고 있는 씨족 집단의 성씨를 딴 것이 많다.

대체로 개척촌은 산림지대나 내륙과 해안의 황무지, 산간의 황무지를 대상으로 형성되어 왔다. 현재는 주로 하천 하류와 해안 지방의 간석지 개간과 야산 개발, 그리고 고랭지 목초지 개발과 채소 재배지 개발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간석지 개간에 따르는 간척촌의 개발은 서해안의 영산강 하류, 곰소만 일대, 동진강, 만경강 하류, 금강 하류, 삽교천, 안성천 하류, 천수만 일대, 아산만 일대, 한강 하류, 강화도 해안, 예성강, 재령강, 대동강 하류 일대에서 주로 행해지고 있다.

개척촌들은 의도적으로 계획 설정하여 성립된 것이 많으므로 일반 자연 취락들에 비해 개척 의지·개척 계획·개척 정책과 개척 자본의 집중 투하로 지표공간구조에 반영되며, 신개척지로 향한 인구 유입으로 이민 취락의 성격이 강하게 부각된다. 또한 이주한 이들로 개척이 이루어져서 촌락 명칭에 그 성격이 잘 반영된다.

지역간 인구 이동 현상이 크게 나타나고, 이주민들이 지닌 문화요소가 전파되어 개척촌이 형성되는 지역에서는 원초경관에서 문화경관으로 경관 변화가 일어난다. 지표상에서의 인간 생활사가 인간의 지표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의 연속적 드라마였다면, 개척촌의 역사는 인간 역사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농경지 개간 과정은 생활 자원이 풍부한 산록완사면에서 계천변의 지류곡지로 향하여 수전(水田: 논)이 확대되어 가고 다시 하천 유역의 충적평야로 향한 수전화가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면, 하천 유역의 수전화가 활발해진 조선 중기 영·정조조 이후에 산록과 내륙 산간의 기존 모촌에서 지류곡지의 자촌을 향하여 분화되어 가는 형식으로 개척촌들은 확대되어왔을 것으로 보인다.

하천 유역에 대한 농경지 개간을 위한 개척촌들은 하천수의 수방 대책을 위한 대토목 공사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이루어져왔을 것으로 유추된다. 이들의 활발한 확대·진출은 조선 중기 이후로 볼 수 있다.

대한제국 말기에 일제 통감부의 압력으로 「국유미개간황무지개간법」이 반포되고 일인에 의한 토지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의 하천 유역의 간석지들은 개척의 대상으로 대두하였다.

그후 동양척식회사의 개척 활동으로 그들의 농업 이민에 의한 개척촌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모든 개척촌들이 계획적인 정규형을 갗추지 않은 것은 오늘날의 간척촌과 다른 점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에서는 산림지대를 개간하여 한전(旱田: 밭)으로, 이를 다시 수전으로 전환하고 오늘날에는 수익성이 높은 채소 재배지로 개간하여 산촌(散村)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그 좋은 보기이다.

화전촌과 신전취락도 개척촌이기는 하나 화전촌은 의도적인 개척 의지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개간된 것은 없다. 임진왜란 이후 전제의 문란, 사회 기강의 해이 등으로 새로운 개간지에 대한 시전(柴田)의 침범 등 권세가에 의한 탈전행위(奪田行爲)가 성행하고 유농(遊農)이 발생되어 조선 숙종 이후 전국 산간 계곡에 확대되었으며 태백산맥·개마고원 등 심산유곡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심산유곡에서의 은둔 생활은 세제와 부역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고 관아나 권세가들의 탈전에서 벗어날 수 있어 유농들의 생활 방편으로 이용되었다. 그리하여 계획적인 것보다는 산곡에 산촌을 이루어 그 규모나 형태가 불규칙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대한제국 말에서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야산 개발을 통한 과수원 개발을 위해 과원취락들이 개척되었다.

이들은 형성역사가 매우 짧고, 과수원에 따라 산촌 형태로 신촌을 이루어 전통 취락과는 다른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과수의 재배·보관·판매에 따르는 특유의 가시적 구조에 변화가 일어났으며, 과수원의 확장으로 과원 개척촌이 성립되었다.

선교사와 일인들의 재배 기술 및 자본은 이의 발달에 기여하는 바가 컸다. 기업적 성격을 띤 과원취락의 개척은 1890년대 이후 도시와 항구 지역을 중심으로 개척되었다. 길주·원산·서울·인천·울산·사리원·황주·남포·나주·대구·포항·전주·구포·소사·안양 등지에 개원되었고, 1920년대 이후 제주도 서귀포에 밀감, 충청남도 예산에 사과 과원이 개척되었다.

일본에서도 에도시대의 신전(新田)취락이나 명치 전반기의 북해도 둔전병촌 같은 것은 당시 개척촌의 예에 해당한다. 개척촌은 일반적으로 계획적인 토지 분할과 가옥 배치가 이루어진다.

일본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식량증산 대책과 해외 귀환자·전재민·제대자·이직공원·농가의 차남 이하에 대한 대책, 수몰민, 자연재해 이재민 등의 입식과 정착을 위한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져 왔다.

전국 각지에 새로운 개척촌이 있는데, 특히 대규모의 산사면 개간·삼림지대 개간·습지 개간·간석지 개간·야산지대 개간·산지산록사면 개간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때 개척촌의 입지에 불가결의 조건은 음료수를 구하기가 쉬운 곳이라야 한다.

따라서 취락 형태는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서도 예로부터 행하여져 온 라인 하류 저습지 개간과 동유럽의 삼림지대 개간, 알프스산지 개간 등으로 개척촌 발달이 있어 왔다.

개척촌이 형성, 발달하는 곳에서는 개척전선이 형성된다. 개척이 진행되는 곳에서는 개척지와 미개척지와의 경계가 있게 되는데, 개척지의 최선단부를 개척전선이라 한다. 현재 국내에서도 서해안 해안 간척지들에는 개척전선이 형성되어 서진하고 있다.

이는 북미의 국토개척시대에 사용되던 용어로 백인 이주자들이 동부 여러 주에서 포장마차를 타고 아팔라치아(Appalachiah)산맥을 넘어 프레이리 지방으로 진출하였다. 이후 포장마차를 타고 서진하여 농촌 취락들과 도시를 건설하였다. 서부 미개간지의 개척은 19세기 후반에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자유·평등·독립정신이 충만하였던 개척자들은 프레이리 지방에서 로키산맥 동쪽 그레이트 풀레인즈(Great Plains)로 개척전선을 압축해갔다. 미국은 1880년에 대륙을 종단하는 전선이 마무리되었다. 골드럿쉬(gold rush)로 열린 개척전선은 태평양 연안에서 동진하여 동부에서 온 개척전선과 로키산맥 중에서 합류하여 개척전선은 소멸되었다.

프런티어정신으로 충만한 자영 농민이 인디안과의 마찰, 그리고 미경험에서 온 각종의 곤란에 맞서 싸운 사실은 농촌을 개척하고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럼으로 해서 이들은 중산 계급으로 구성된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성원이 되었으며 미국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중미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해안에서 직각으로 내륙으로 진입하는 철도를 부설함으로써 개척을 촉진하게 되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인구가 희박하여 원주민들과의 투쟁은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개척전선은 급격하게 내륙으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내륙의 밀림으로 된 아마존강저지는 개척전선의 진출을 가로막는 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에 의한 시베리아 개척전선은 북류하는 대하천 지류들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로로 하여 동진할 수 있었다. 개척전선의 확대 과정에서 하천의 역할은 매우 크다. 타이가(Taiga)지대·툰드라지대(Tundra)에로의 개척전선의 북진은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의 국토 개조 계획의 일환으로 행해져 왔다.

일본에서는 1869년 북해도개척사(北海道開拓使)의 설치로 북해도의 개척이 시작되었는데 해안에서 내륙으로 향한 개척이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둔전병을 포함한 관영 개척의 색채가 농후하였다. 입식지의 선정은 모두 개척사(開拓使)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모집 이민과 자유 이민은 철도와 도로의 건설로 증가되어 개척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산간의 고랭지를 중심으로 한 개척촌의 개발이 활발하다. 고랭지농업은 고도가 높은 냉량한 기후에서 고거한계(高距限界)를 극복하면서 행해지는 농업이다. 고지대에서는 그간 냉해가 심하기 때문에 벼 따위의 주곡 작물 생산에는 적합치 않아 개척이 늦어졌다.

그런데 근세에는 신전이나 개척촌의 개척으로 야채를 억제 재배하여 자연 조건에 적당한 야채 원예농업을 하는 지역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예로부터 고랭지는 방목지가 넓게 분포하고 종마의 생산이 유망한 생산 부분이었다.

그런데 낙농업이 발달하면서부터는 태백산맥의 대관령 일대에서처럼 생유의 공급지가 많아졌고, 운봉분지의 종축장이나 화홰단지에서처럼 화초의 생산이 많아지고 있다. 또 최근에는 피서나 보건 휴양지의 역할이 커져 새로운 개척촌의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참고문헌

『전환기의 한국지리』(남궁봉, 교학사, 1993)
『지리학사전(개정판)』(정장호 편저, 우성문화사, 1993)
『한국의 지명』(이영택, 태평양, 1986)
「만경강유역의 개간과 취락형태에 관한 연구」(남궁봉,『문화역사지리』5,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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