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성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검열, 홍문관저작, 춘추관기사관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신천(信川)
  • 사망 연도1469년(예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검열|홍문관저작|춘추관기사관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용혁 (공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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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검열, 홍문관저작, 춘추관기사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신천(信川). 강득화(康得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생민(康生敏)이며, 아버지는 판관 강기(康耆)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68년(세조 14)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검열을 거쳐 홍문관저작이 되었다. 이듬해 춘추관기사관으로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때 춘추관에 재직한 자들에게 모두 사초(史草)를 바치게 하였는데, 민수(閔粹)는 자신이 소신껏 쓴 사초가 문제를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강치성을 시켜 몰래 사초를 꺼내오게 하여 고쳤다. 이 사실이 발각되자 민수는 관노(官奴)로 영속(永屬)되는 벌을 받았고, 강치성은 참형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 - 『예종실록(睿宗實錄)』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소대기년(昭代紀年)』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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