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시대 대몽항쟁 당시 고려대장경 목판을 조각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사찰터.
개요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도학술조사단이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발견하여, 몇 개의 주춧돌과 보상화무늬 전돌, 범자(梵字) 새긴 기와, 지붕에 얹었던 잡상 등을 확인하였다. 이후 선원면(仙源面) 도감마을, 도감산에 있는 절터이므로 학술적 · 역사적 가치와 지역 연원에 근거하여, 1977년 사적 강화선원사지로 지정되었으나 위치에 대한 논란이 있다.
내용
출토 유물로 보면 절터와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되나,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고려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선원사(禪源寺) 터로 볼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가 확인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더구나 1931년 편찬된 『속수증보강도지(續修增補江都誌)』에 “선원면 선행리 충렬사 앞 인근 일대가 선원사의 유지”라 되어 있어, 향토사가들은 이를 근거로 현재 선원사지는 가궐터(假闕址)이며, 충렬사 전면 터가 선원사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헌사학계에서도 현 위치가 문헌자료와 배치된다는 이유로, 선원면 선행리의 충렬사 부근이 선원사지이며, 대단히 많은 수량의 치미, 용두, 잡상이 출토된 현 선원사지는 사찰이라기보다 궁궐과 가까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 5월 한국문화재보호재단(현, 국가유산진흥원)이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에서 발견한 건물 터가 고려시대 가궐(假闕) 터로 추정되고 있어, 앞으로의 조사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강화 선원사의 위치에 대한 재검토」(채상식, 『한국민족문화』34,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09)
- 『사적 259호 강화 선원사지 발굴 조사 보고서』Ⅰ-Ⅱ(동국대학교 박물관·강화군, 2003)
- 「강화 선원사의 위치 비정」(이종철·조경철·김영태, 『한국선학』2, 2001)
- 국가유산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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