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례문 ()

목차
고대사
유물
신라시대 궁궐 12문 가운데 하나로서 정남(正南)에 위치한 문.
이칭
이칭
국왕봉사관료군, 예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신라시대 궁궐 12문 가운데 하나로서 정남(正南)에 위치한 문.
개설

건례문은 궁궐의 문이기도 하지만, 신라 하대에는 ‘건례선문(建禮仙門)’이라 하여 국왕에게 봉사하는 관료군을 말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으로도 보인다.

내용

신라 하대 최치원(崔致遠)이 찬술한 『숭복사비(崇福寺碑)』에 의하면 원성왕릉의 조영과 곡사(鵠寺)를 옮겨 짓는 공사 담당자를 임명하면서 ‘단원(端元)·육영(毓榮)·유영(裕榮) 등 종실 3량(宗室三良)을 건례선문에서 발탁하고, 현량(賢諒)·신해(神解) 등 석문 2걸(釋門二傑)을 소현정서(昭玄精署)에서 천거토록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인재를 건례선문에서 뽑았다(擇人龍於建禮仙門)’는 데서 지금까지는 이를 예부(禮部)의 별칭으로 추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숭복사 건립은 속감전(俗監典)·도감전(道監典)의 체계에서 운영되었는데, 특히 속감전에 속하여 공사를 담당한 인물들은 모두 왕의 종친이었다.

물론 국가 또는 왕실의 발원으로 이루어진 불사에는 왕실의 인물이 수조관(修造官)으로 참여하게 마련이겠지만, 이들 불사의 조영에 참여한 관료들의 관직을 살필 때, 여기에서의 건례선문은 국왕에게 봉사하는 관료군을 아화(雅化)한 명칭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신라수공업사(新羅手工業史)』(박남수, 신서원, 1996)
『역주역대고승비문(譯註歷代高僧碑文)』-신라편(新羅篇)-(이지관 역, 가산문고, 1993)
『역주한국고대금석문(譯註韓國古代金石文)』3(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1992)
『주해사산비명(註解四山碑銘)』(최영성 역, 아세아문화사, 1987)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1919)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