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보육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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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유치원 교사 양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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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7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유치원 교사 양성학교.
내용

설립자 유일선(柳一宣)은 1924년 4월경성부 청진동에 갑자유치원(甲子幼稚園)을 설립하여 운영해 오던 중, 1926년부터 유치원 안에 1년제 유치원 사범과를 설치하였다. 1927년 8월에 학무국의 인가를 받아 2년제 경성보육학교로 승격되었다.

갑자유치원 및 경성보육학교의 재단은 일본계 교회인 조선회중교회(朝鮮會衆敎會)이며, 유일선은 조선전도부의 부주임을 담당하였다. 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2년제 본과(本科)와 여자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정도를 대상으로 한 1년제 선과(選科)를 두었으며, 입학시험은 일본어·산수·한문·작문·음악의 학과시험과 구술시험·신체검사를 실시하였다.

1928년 학생모집 상황은 본과 50명, 선과 20명으로, 교육과정은 윤리학·교육심리학·유희·음악이었으며, 특히 음악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교수진은 독고 선(獨孤璇)·홍난파(洪蘭坡)·김원복(金元福)·홍성유·김성남(金聲男)·백정진(白貞鎭)·김성태(金聲泰)·김자경(金慈璟)·이흥렬(李興烈) 등이 담당하였다.

매년 졸업생은 20명 내외였으며 대부분 유치원 교사로 취업하였다. 1931년에는 교직원 수 3명에 학생 2학급 47명이었으며, 1933년에는 교직원 수 8명에 학생 64명이었다. 1933년에 학교의 운영이 독고 선·석진형(石鎭衡) 외 3명의 경영진으로 바뀌고, 교장에 독고 선이 취임하였다.

1935년에 홍정구(洪正求)의 기부로 청진동 구교사 자리에 교사를 신축하고 4백명을 수용하는 강당도 갖추었다. 1939년부터 학생 정원 200명에 4학급으로 증설되어 전교생이 400명에 이르는 발전을 보였다.

특히, 음악활동이 활발하여 교수 및 학생들을 위한 음악회가 자주 개최되었고, 유치원 교사를 위한 음악강습회 운영 및 학생들의 전국순회음악회 등이 개최되었다. 경성보육학교는 15여 년 동안 당시의 유치원교사 양성을 담당하다가 1943년에 폐교되었다.

참고문헌

『여성(女性)』(1937. 10. 11.)
『조광(朝光)』(1936. 3. 6.)
『신여성(新女性)』(1933. 10.)
『日本帝國主義下の朝鮮傳道』(飯沼二郎 外, 日本基督敎團 出版局,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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