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은 각 주·군·현 등의 지방에서 학생을 선발하여 서울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였는데, 일정한 교육을 받은 뒤 고향에 돌아가기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987년(성종 6) 학문에 통달한 자를 뽑아 경학박사로 삼아서 12목(牧)에 각각 1인씩을 보냈다.
경학박사는 교유(敎諭)를 돈독히 행하고, 각 주·군·현의 관리나 백성 중 가르칠만한 자제가 있으면 교육을 시키도록 하였다. 또한, 좋은 성적을 올린 자에게는 상을 내리고, 성적이 부진한 자는 임기가 만료되어도 그대로 유임시켜 성과를 올리도록 하였는데, 989년 나주목(羅州牧)의 경학박사 전보인(全輔仁)이 맡은 바 소임을 열심히 하였다 하여, 공복(公服)과 쌀 50석을 받았다.
12목의 경학박사 중 그 제자가 과거에 오르는 일이 한번도 없는 경우에는, 임기가 찼다 하더라도 유임시켜서 그 효과를 내도록 책임지게 하는 한편, 그 성과를 참작하여 관계(官階)가 주어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