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삼국시대, 일본 사이타마현[埼玉縣] 히다카시[日高市]에 있는 고구려계 이주민이 세운 신사(神社).
창건과 전승
현재에도 이 신사의 사제직을 대대로 계승한 것을 기록한 고려씨족의 가계도가 전해지고 있다. 그중 한 권은 1259년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된 것이다. 이에 의하면 사제직을 대대로 계승한 고려씨족들의 선조는 약광왕(若光王)의 적류(嫡流)임을 알 수 있다. 현 궁사(宮司)는 제60대인 코마후미야스[高麗文康]가 맡고 있다.
근대 이후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에 들어 조선 지도층들에 대한 일본의 협력을 확대할 목적으로 일본의 발전상을 견학시키는 내지시찰단(內地視察團)을 파견하는데, 그 방문지로서 이 신사도 포함한다. 그리고 1920년 5월 일본에 파견된 내지시찰단의 모습을 영화로 제작하여 동년 7월까지 조선의 17개소에서 상영하였는데, 당시 관람자 수가 6만 8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이 신사의 존재가 조선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조선인 내지시찰단과 관광단 등의 신사 방문이 계속되었다. 또 1925년 3월에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사이토마코도[斎藤実], 1940년 6월에는 제7대 조선총독 미나미지로[南次郎], 1942년 11월에 영친왕 이은(李垠) 등 당대 조선 최고의 정치가들의 방문이 있기도 하였다. 또 1940년 4월에는 조선 경성의 조선 신궁에 고려 신사에서 보내온 벚나무를, 그리고 고려 신사에는 조선 신궁에서 보내온 오엽송을 각각 신목(神木)으로 심는 신목교환(神木交換)이 이루어진다. 이는 내선일체에 관한 종교적인 의례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 신사는 근대에 들어 조선총독부의 내선일체 정책에 이용되면서, 그 상징과도 같은 위상을 얻으며 일본의 중요 신사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이후 현재까지 이 신사는 한일 문화 교류의 장소로서 역할하고 있다. 특히, 사이타마현민단 본부의 주최로 이곳에서는 매년 10월 하순에 ‘10월의 마당[シオルノマダン]’이라는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여기서는 다양한 한국 음식과 사물놀이 등의 한국 전통 문화가 일본 현지인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또한 신사의 경내에는 2005년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하여 재일본대한민국단(在日本大韓民国民団)이 기증한 우리나라 장승 한 쌍이 세워져 있다. 본래 1992년부터 나무로 만든 장승이 기증 · 설치되어 왔으나 그것이 부식 · 파손되어 2005년에 화강암으로 다시 만들어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문화유산
참고문헌
원전
- 『角川日本地名大辭典』(埼玉縣編, 角川書店, 1980)
- 『日本古代史と朝鮮文化』(金達壽, 筑摩書房, 1976)
- 『歸化人』(令井啓一, 綜藝舍, 1974)
논문
- 사토 아쓰시, 「근대기의 고마신사[高麗神社] : 근대에 이용된 고대」(『동아시아고대학』 46, 동아시아고대학회, 2017)
- 糟谷 政和, 「高麗神社と高来神社」(『茨城大学人文社会科学部紀要. 人文コミュニケーション学論集』 2, 2018.03.)
- 斎藤 厚, 「近代の高麗神社」(『Mathesis Universalis』 18, 2016)
- 高麗 文康, 「高麗神社の創建と参拝者」(『古代朝鮮文化を考える』 16, 2001)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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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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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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