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백선 ()

한문학
문헌
조선 후기 문인 김석주가 100편의 중국 고문을 모아 수록한 고문 선집.
이칭
이칭
고문선(古文選), 고문(古文), 고문션
문헌/고서
편찬 시기
숙종 대
편자
김석주(金錫胄)
권책수
7권 3책, 10권 10책
판본
목판본, 금속활자본, 필사본
표제
古文百選, 고문션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일본 오사카 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
내용 요약

『고문백선』은 조선 후기 문인 김석주가 중국 고문을 모아 수록한 고문 선집이다. 선진(先秦) 시대부터 당송(唐宋) 시대까지의 명문장(名文章) 백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문으로 기록된 책으로, 목판본과 금속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는데, 한문을 언해한 한글 필사본도 제작되었다. 당시에는 당송 고문에 치중된 고문 선집이 일반적이었다면, 이 책은 선진 고문의 수록 비중을 대폭 늘려서 수록한 점이 특징이다. 숙종 대 이후 문인들의 고문 학습 현황을 알려 주는 자료이자, 중세 한글 변천사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정의
조선 후기 문인 김석주가 100편의 중국 고문을 모아 수록한 고문 선집.
서지 사항

7권 3책의 한문 목판본 및 한문 금속 활자본, 10권 10책의 한글 필사본이 있다. 한문 금속 활자본은 무신자본(戊申字本)과 한구자본(韓構字本)이 있고, 한문 목판본은 이를 주1한 것이다. 또한 한글 필사본은 한문본을 언해한 것이다. 한문 목판본 및 금속 활자본은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일본 오사카 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한글 필사본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과 내용

『고문백선』은 김석주(金錫胄)가 중국의 선진(先秦) 시대부터 당송(唐宋) 시대까지의 명문장(名文章) 100여 편을 뽑아 놓은 고문 선집(古文選集)이다.

김석주가 지은 「고문백선서(古文百選序)」( 『식암유고(息庵遺稿)』 권8)에 따르면, 이 선집은 과거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작문(作文) 교과서로 편찬된 것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과거 시험뿐만 아니라 초학자(初學者)들의 문장 학습을 위한 교과서로 더 널리 읽혔다.

『고문백선』은 본래 한문으로 기록된 책으로 목판본과 금속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는데, 한문을 언해한 한글 필사본도 제작되었다. 다만 한문본과 한글본의 편집 체재는 차이를 보인다. 7권 3책의 한문본은 1책에 상편 1-2(권1-2), 2책에 상편 3(권3)과 중편 1(권4), 3책에 중편 2-3(권5-6)과 하편(권7)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편 10권 10책의 한글본은 한문본과 마찬가지로 크게 상편(권1-5), 중편(권6-9), 하편(권10)으로 구분되고 1권이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한글본에는 한문본과는 달리 김석주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고문백선』의 상편과 중편은 시대에 따라 선진 시대, 당대(唐代), 송대(宋代) 순으로 작품을 배치하여 구분하였다. 즉 상편에도 선진 시대부터 송대까지, 중편에도 선진 시대부터 송대까지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다만 하편의 경우는 따로 구분 없이 모든 작품들을 한꺼번에 수록해 둔 점이 상편 및 중편과 다르다. 각 편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수록된 작가와 작품 제목은 다음과 같다.

한문본 『고문백선』의 경우, 상편 1은 연(燕)나라 악의(樂毅)의 「보연혜왕서(報燕惠王書)」부터 후한(後漢) 주2의 「여조공론성효장서(與曹公論盛孝章書)」까지, 상편 2는 당(唐)나라 주3의 「논불골표(論佛骨表)」부터 당나라 주4의 「포사자설(捕蛇者說)」까지, 상편 3은 송(宋)나라 왕우칭(王禹偁)의 「대루원기(待漏院記)」부터 송나라 주5의 「답이추관서(答李推官書)」까지, 중편 1은 한(漢)나라 주6의 「치안책(治安策)」부터 한나라 주7의 「간불수선우조서(諫不受單于朝書)」까지, 중편 2는 당나라 한유의 「평회서비(平淮西碑)」부터 당나라 유종원의 「봉건론(封建論)」까지, 중편 3은 송나라 주8의 「상범사간서(上范司諫書)」부터 송나라 호전(胡銓)의 「상고종봉사(上高宗封事)」까지, 하편은 초(楚)나라 주9의 「어부(漁父)」부터 송나라 주10의 「명도선생묘표(明道先生墓表)」까지 수록되어 있다.

『고문백선』에 작품을 수록할 때에는 작품 본문만을 수록하는 것이 이 책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적용된 원칙이다. 그러나 하편 끝부분에 수록된 장재(張載)의 「서명(西銘)」 한 편에 대해서만은 큰 주석 아래에 더 자세한 주석을 달아 두었다. 또한 본문 말미에는 미비(眉批)를 수록하여 해당 작품의 이해를 돕는 경우도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누방(樓昉)의 『숭고문결(崇古文訣)』, 진덕수(陳德秀)의 『문장정종(文章正宗)』, 주11의 『문편(文編)』, 모곤(茅坤)의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鈔)』 등 중국의 문장 선집에 실린 논평을 인용한 것이 많고, 간혹 김석주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논평이 등장하기도 한다.

『고문백선』의 서문에서 김석주는 고문을 초선(抄選)하여 학습하는 효과를 군사에서 용병을 잘하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정예로운 병사를 적은 수효로 선발하여 전장에 나서면 기이한 전적을 낼 수 있듯이, 고문 학습도 많이 읽는 것보다 적은 수효의 작품을 정화롭게 뽑아 읽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측면은 박지원(朴趾源)이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에서 사용하였던 비유 방식과 소통되는 것으로 흥미 있는 논리 전개이다.

김석주는 종래에 유행하고 있던 『 고문진보(古文眞寶)』나 『문장궤범』이 사(辭)나 부(賦)를 섞어 뽑았고, 또한 작가들도 주로 당 · 송 시대에 치우쳐 있는 점을 결점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문체에 있어서는 보다 순수한 고문 문체를, 시대에 있어서는 진한(秦漢)으로부터 남송(南宋)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뽑아 완벽을 기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래서 김석주는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작품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것들을 고문 문체의 전범으로 수용하였다. 다시 말해, 당시 일반적으로 널리 읽혔던 문장 학습 교본들이 당송 고문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학습의 균형이 맞지 않았던 데 반해, 이 책은 선진 고문의 수록 비중을 대폭 늘려서 독자들이 시대에 구애 받지 않고 모범이 되는 작품을 균형 있게 학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의의

『고문백선』은 숙종 대 이후 고문 학습의 현황을 알려 주는 자료이자 중세 한글 변천사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로서 그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고문진보(古文眞寶)』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문장궤범(文章軌範)』
『문장정종(文章正宗)』
『문편(文編)』
『숭고문결(崇古文訣)』
『식암유고(息庵遺稿)』
『전상고삼대진한삼국육조문(全上古三代秦漢三國六朝文)』(엄가균(嚴可均) 교집)

논문

김광년, 「息庵 金錫胄 散文 硏究」(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인터넷 자료

한국학자료포털(http://ksstma.aks.ac.kr)
주석
주1

한 번 새긴 책판을 본보기로 삼아 그 내용을 다시 새김. 우리말샘

주2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학자(153~208). 자는 문거(文擧). 건안 칠자의 한 사람으로, 북해(北海)의 재상이 되어 학교를 세웠고, 조조를 비판ㆍ조소하다가 일족과 함께 처형되었다. 저서에 ≪공북해집(孔北海集)≫이 있다. 우리말샘

주3

중국 당나라의 문인ㆍ정치가(768~824). 자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변려문을 비판하고 고문(古文)을 주장하였다. 시문집에 ≪창려선생집≫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4

중국 당나라의 문인(773~819). 자는 자후(子厚).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고문(古文) 부흥 운동을 한유(韓愈)와 더불어 제창하였다. 전원시에 뛰어나 왕유ㆍ맹호연ㆍ위응물과 나란히 칭송된다. 작품에 <봉건론(封建論)>, <영주팔기(永州八記)#GT#따위가 있으며, 시문집 ≪유하동집(柳河東集)≫이 있다. 우리말샘

주5

중국 북송 때의 문학가(1054~1114). 글을 잘 지어 황정견(黃庭堅), 조보지(晁補之), 진관(秦觀)과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로 불렸다. 저서로 ≪시설(詩說)≫과 ≪완구집(宛邱集)≫ 등이 있다. 우리말샘

주6

중국 전한(前漢) 문제 때의 학자ㆍ정치가(B.C.200~B.C.168). 문제(文帝)를 섬기며 유학과 오행설에 기초를 한 새로운 제도의 시행을 주장하였다. 저서에 ≪좌씨전훈고(左氏傳訓詁)≫, ≪신서≫, ≪복조부(鵩鳥賦)≫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7

중국 전한의 학자ㆍ문인(B.C.53~A.D.18). 자는 자운(子雲). 성제(成帝) 때에 궁정 문인이 되어 성제의 사치를 풍자한 문장을 남겼다. 후에 왕망(王莽) 정권을 찬미하는 글을 써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작품에 <감천부(甘泉賦)>, <하동부(河東賦)>, 저서에 ≪법언(法言)≫, ≪태현(太玄)≫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8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ㆍ문인(1007~1072).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ㆍ육일거사(六一居士). 당나라 때의 화려한 시풍을 반대하여 새로운 시풍을 열고, 시ㆍ문 양 방면에 걸쳐 송대 문학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당송 팔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서에 ≪신오대사≫, ≪신당서≫, ≪모시본의(毛詩本義)≫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9

중국 전국 시대 초나라의 정치가ㆍ시인(B.C.343?~B.C.277?). 이름은 평(平), 자는 원(原). 초사(楚辭)라고 하는 운문 형식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모함을 입어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다가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 작품은 모두 울분이 넘쳐 고대 문학에서는 드물게 서정성을 띠고 있다. 작품에 <이소(離騷)>, <천문(天問)>, <구장(九章)#GT#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0

중국 북송의 유학자(1033~1107). 자는 정숙(正叔). 호는 이천(伊川). 최초로 이기(理氣)의 철학을 내세우고 유교 도덕에 철학적 기초를 부여하여, 형인 정호(程顥)와 함께 이정자(二程子)라고 불린다. 저서에 ≪이천선생문집≫, 공저인 ≪이정전서(二程全書)≫가 있다. 우리말샘

주11

중국 명나라의 정치가ㆍ학자(1507~1560). 자는 응덕(應德). 호는 형천(荊天). 천문 지리를 비롯하여 백가(百家)의 학문에 능하였으며, 만년에 장쑤성(江蘇省) 연안의 왜구를 막아 공을 세웠다. 저서에 ≪형천선생문집≫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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