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년(정조 14)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제(金濟)와 김주(金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98년(정조 22) ‘孤竹(고죽)’이라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쌍절사(雙節祠)·고죽당(孤竹堂)·동재(東齋)·서재(西齋)·신문(神門)·전사청(典祀廳)·주소(廚所)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