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중월리 고분군 ( )

목차
선사문화
유적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널무덤 · 독무덤 · 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널무덤 · 독무덤 · 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유적은 높이 48m의 작은 구릉 정상부와 경사면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1981년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옹관묘(甕棺墓) 1기와 석관묘(石棺墓) 1기, 파옹개토광묘(破甕蓋土壙墓) 2기 등 모두 4기의 백제시대 고분이 확인되었다.

내용

옹관묘는 생토층을 남∼북 길이 0.75m, 동∼서 너비 0.5m의 크기로 0.2m 정도를 판 다음 그 속에 백제토기 항아리 2개를 이어서 배치한 이음식(合口式)이다. 독널로 사용된 항아리는 대체로 구형(球形)을 취하고, 입술이 넓고 크게 외반하고, 목부분이 약 2㎝ 정도 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목이 달려 있으며, 동체부의 양쪽에는 횡대의 둥근손잡이(環形把手)를 부착하여 양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옹관묘는 부여 능산리와 염창리에서도 출토된 적이 있다.

석관묘는 주변에 민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파괴된 것으로, 동∼서 길이 2.08m, 너비 0.5m이며 동침이다. 장축을 이룬 남쪽과 북쪽의 벽은 각각 4매의 판돌을 세워 조립하였으며, 동벽과 서벽은 각각 1매의 판돌로 막음질하였다. 덧널 내에는 수 개의 독널을 파괴하여 파편을 바닥 전면에 깔았으나 서쪽 일부는 깔지 않았다. 덧널 안에서 2점의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평저의 입큰바리(廣口鉢)와 짧은목병(短頸甁)이다. 내부에서는 동쪽 끝부분에 토기 2점이 놓여 있었는데, 공주 남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파수부용기(把手付容器)와 유사한 계통의 것이다. 서쪽 약 2∼3m 거리에서는 백제시대 요지(窯址)도 발견되었다.

2기의 파옹개토광묘는 옹관묘에서 북동쪽으로 10여m 거리에 있다. 이 묘는 독모양의 토기를 세로로 파괴한 조각으로 토광묘의 덮개로 사용한 매우 희귀한 형태이다. 또한 가까운 거리에서 남북을 장축으로 한 것과 동서를 장축으로 한 것이 각각 1기씩 발견되었다.

전자는 길이 1.3m, 너비 0.48m, 깊이 0.5m 규모로, 2기의 독을 파괴해 덮개로 사용하였다. 토기는 회색빛을 띠며, 기형과 질 · 무늬 등이 부안 · 고창일대에서 흔히 발견되는 토기들과 일치한다. 매장주체부는 아무런 시설없이 흙으로만 채워졌다.

후자는 토기조각을 7단으로 덮었는데, 1∼3단의 각 접합지점 위에는 각각 작은 토기조각을 2개씩 올려놓았으며, 3∼5단에는 접합부 위에 각각 한 조각씩 올려놓았다. 매장주체시설의 길이는 1.4m, 너비 0.75m, 깊이 0.45m인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면서 토기조각이 점점 작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내부에 별다른 시설은 없고, 흙으로 채워져 있다. 머리방향은 서향으로 추정된다. 이들 유적은 유구나 출토유물로 보아 백제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고창중월리문화유적발굴조사보고서(高敞中月里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원광대학교마한백제문화연구소(圓光大學校馬韓百濟文化硏究所), 1984)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