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남도 목포시 고하도에 있는 조선후기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관련 기념비.
개설
내용
그 내용은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군사 주둔처로 고하도를 설정하게 된 과정, 진이 1647년(인조 25)에 당곶(唐串, 현 전라남도 목포시 이로동 하당)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순신의 유허가 소실됨을 안타깝게 여기던 통제사 오중주가 유허비 건립을 주도한 내용 및 전쟁시 군량미의 중요성, 그리고 후임 통제사로 하여금 고하도가 진터임을 알도록 하기위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뒷면에는 ‘숭정기원후구십오년 임인팔월(崇禎紀元後九十五年 壬寅八月)’로 건립 연대가 새겨 있다. 몸돌의 높이는 227㎝, 너비는 112㎝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당초문이 새겨진 네모꼴의 이수와 특별히 꾸미지 않은 좌대를 갖추었다. 비는 모충각(慕忠閣) 안에 있고 42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야산에 버려져 있었던 것을 광복이 되면서 현 위치에 세웠다. 1949년에 비각을 건립하였고 1973년 중수하였다.
참고문헌
- 『약천집(藥泉集)』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 문화예술과, 1998)
- 『역사유적』(김경옥, 목포시의 문화유적, 목포시·목포대박물관, 1992)
-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gsm.nricp.go.kr)
- 국가유산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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