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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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 / 비각
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 / 비각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전라남도 목포시 고하도에 있는 조선후기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관련 기념비.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고하도이충무공기념비(高下島李忠武公紀念碑)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74년 09월 24일 지정)
소재지
전남 목포시 고하도길 175 (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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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목포시 고하도에 있는 조선후기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관련 기념비.
개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당시에 통제사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군량미를 보관하기 위해 당시 나주(羅州) 고하도에 시설을 갖추고 별장(別將)을 두어 관리하게 했던 행적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비이다. 기념비의 건립은 1722년(경종 2) 통제사로 부임한 오중주(吳重周)와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李鳳祥)이 옛 터에 비를 세웠다. 1974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고하도 이충무공유적 안에 함께 있다.

내용

비의 명칭은 ‘유명조선국 고삼도통제사 증좌의정충무이공 고하도유허기사비(有明朝鮮國 故三道統制使贈左議政忠武李公 高下島遺墟記事碑)’이며, 남구만(南九萬)이 비문을 지었고, 조태구(趙泰耉)가 글씨를 썼다. 이광좌(李光佐)가 전액을 썼다. 비문은 17행 48자이다. 비문의 내용이『약천집(藥泉集)』권19에 「고하도이충무공기사비(高下島李忠武公記事碑)」로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군사 주둔처로 고하도를 설정하게 된 과정, 진이 1647년(인조 25)에 당곶(唐串, 현 전라남도 목포시 이로동 하당)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순신의 유허가 소실됨을 안타깝게 여기던 통제사 오중주가 유허비 건립을 주도한 내용 및 전쟁시 군량미의 중요성, 그리고 후임 통제사로 하여금 고하도가 진터임을 알도록 하기위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뒷면에는 ‘숭정기원후구십오년 임인팔월(崇禎紀元後九十五年 壬寅八月)’로 건립 연대가 새겨 있다. 몸돌의 높이는 227㎝, 너비는 112㎝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당초문이 새겨진 네모꼴의 이수와 특별히 꾸미지 않은 좌대를 갖추었다. 비는 모충각(慕忠閣) 안에 있고 42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야산에 버려져 있었던 것을 광복이 되면서 현 위치에 세웠다. 1949년에 비각을 건립하였고 1973년 중수하였다.

참고문헌

『약천집(藥泉集)』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 문화예술과, 1998)
『역사유적』(김경옥, 목포시의 문화유적, 목포시·목포대박물관, 1992)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gsm.nricp.go.kr)
국가유산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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