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형조참판, 충청도병마절도사, 훈련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순절자.
이칭
  • 의숙(儀叔)
  • 시호충민(忠愍)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정미환국|이인좌의 난
  • 본관덕수(德水: 지금의 황해북도 개풍)
  • 사망 연도1728년(영조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형조참판|충청도병마절도사|훈련금위대장
  • 출생 연도1676년(숙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전형택 (전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이봉상 장군 투구 미디어 정보

이봉상 장군 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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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형조참판, 충청도병마절도사, 훈련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순절자.

개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의숙(儀叔). 이순신(李舜臣)의 5대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02년(숙종 28)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경종의 재위 중에 포도대장·훈련원도정·삼도수군통제사·총융사·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형조참판으로서 훈련금위대장을 겸임하였다. 이 때 이광좌(李光佐)·조태억(趙泰億) 등의 죄상을 논박하였다가, 정미환국으로 그들이 다시 정권을 잡자 어영대장에서 좌천되어 충청도병마절도사로 나갔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켜 청주를 함락하였을 때 작은아버지 이홍무(李弘茂)와 함께 반란군에게 붙잡혀 죽었다. 충청감영에 들어온 이인좌가 항복할 것을 권하였지만 충무가(忠武家)의 충의(忠義)를 내세워 끝내 굽히지 않았다 한다.

어사 이도겸(李道謙)이 청주로부터 돌아와 그 순절을 전하자, 영조는 정려를 세우고 좌찬성에 추증하였으며, 뒤에 헌종이 청주에 표충사(表忠祠)를 세워 제향하게 하였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강한집(江漢集)』

  • - 『감난록(勘亂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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