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도성 안에 있던 시전 상인이 물품을 판매하던 공간.
제정 목적
1412년(태종 12)부터 진행된 시전 공랑 조성 사업은 1414년(태종 14)까지 진행되어 총 2,027칸의 공랑을 조성하였다. 공랑이 위치한 구역은 경복궁 남쪽 혜정교부터 종묘 앞 누각까지의 구간과 종루부터 광통교까지의 구간으로 추정된다. 이는 오늘날의 종로 1가∽3가, 남대문로 1가에 해당된다.
내용
변천사항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경국대전(經國大典)』
- 『반계수록(磻溪隧錄)』
- 『수선전도(首善全圖)』
논문
- 고동환, 「조선후기 서울 도시공간의 변동:상업발달과 관련하여」(『서울학연구』 52, 서울학연구소, 2013)
- 고동환, 「조선후기 王室과 시전상인」(『서울학연구』 30, 서울학연구소, 2008)
- 고동환, 「조선후기 시전의 구조와 기능」(『역사와현실』 44, 한국역사연구회, 2002)
- 박평식, 「朝鮮初期 市廛의 成立과 ‘禁亂’問題」(『한국사연구』 93, 한국사연구회, 1996)
- 최주희, 「조선후기 왕실 · 정부기구의 재편과 서울의 공간구조」(『서울학연구』 49, 서울학연구소, 201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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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가에 있던 다리. 조선 태종 12년(1412)에 설립되었으며, 죄인을 다스리는 공개 처형장으로도 사용되었다. 1926에 ‘복청교’로 개칭되었다가 1960년대에 청계천 복개 공사 과정에서 철거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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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서울특별시의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 조선 시대 태조 때에 흙으로 만들었다가 폭우로 유실되어, 태종 10년(1410)에 돌로 다시 축조하였다. 1910년에 전차 선로 공사로 매몰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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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선 시대에, 전매 특권과 국역(國役) 부담의 의무를 진 서울의 여섯 시전(市廛). 선전(縇廛), 면포전(綿布廛), 면주전(綿紬廛), 지전(紙廛), 저포전(紵布廛), 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을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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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시대에 관에서 시전 상인에게 공랑을 빌려주고 거둔 잡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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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얼음을 떠서 곳간에 저장함. 또는 그 얼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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