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서

  • 역사
  • 제도
  • 고려 후기
고려·조선 초기 왕이 쓰는 기물과 장식품의 제조를 감시하고 수지(收支)를 관장하였던 관서.
이칭
  • 이칭공조서, 상의원(尙衣院), 중상서(中尙署)
제도/관청
  • 설치 시기고려 후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천식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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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조선 초기 왕이 쓰는 기물과 장식품의 제조를 감시하고 수지(收支)를 관장하였던 관서.

내용

그 연혁은 목종 때 중상서(中尙署)를 설치하였고, 문종이 직제를 정하여 영(令) 1인, 승(丞) 2인을 두고, 이속(吏屬)으로는 사(史) 6인, 기관(記官) 2인, 산사(算士) 1인을 두었다.

1310년(충선왕 2) 공조서라 하였다가 1356년(공민왕 5) 다시 중상서로 고치고 영을 봉어(奉御)라 하였다. 그 뒤 다시 공조서로 고치고 봉어를 영이라 하였다가 1369년 다시 중상서로 칭하였으나, 1372년에 이르러서는 공조서로 고쳤다.

조선왕조에서는 고려의 관제에 준하여 공조서라 하였다가 뒤에 상의원(尙衣院)으로 고쳤다. 공장(工匠)들이 맡은 일은 그림 그리는 일, 목공 · 조각 · 나전 등의 일이었는데 옻칠하는 일, 주렴(珠簾 : 구슬로 만든 발) 만드는 일, 빗[梳]만드는 일과 죽물 세공도 있었다.

죽물에는 죽기 · 선죽(扇竹) · 화살 · 발 등이 있는데, 죽기에는 광주리 · 둥구미[筥] · 대자리 등이 있었다. 이것들의 재료는 지방에서 진상하는 대나무로 충당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 - 『조선과학사(朝鮮科學史)』(홍이섭, 정음사,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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