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하여 발굴되었으며 1976년 1월 8일에 충청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공주의 금강 북안에 위치한 신관동 마을의 뒷산 언덕에 위치하며, ‘시목동(枾木洞)고분’이라고도 불린다. 제1호분과 제2호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백제시대의 전형적인 돌방무덤[石室墳]이다. 도굴된 상태에서 발견되어 부장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1호분과 2호분의 구조 양식과 규모는 거의 비슷한데, 널방[玄室]은 여러 장의 큰 판돌을 사용하였고, 널길[羨道]은 남쪽 가운데에 있다. 이들 2기의 고분은 소위 맞배천장형 고분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여러 개의 대판석(大板石)을 사용하여 널방의 횡단면이 5각형이 되게 꾸미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이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판석은 화강암으로 잘 다듬어진 것으로서 유명하다.
1호분과 2호분은 그 형식이 거의 동일한데 이 가운데서 1호분은 길이 2.73m, 너비 1.25m, 높이 1.5m 되게 판석으로 널방을 꾸몄다. 이를 위해 벽면은 동쪽에 2매, 서쪽에 3매의 화강암 대판석을 세우고, 북벽에는 위가 뾰족한 5각형인 1매의 대판석으로 막고 있는데, 천장은 4매의 판석을 조립하여 맞배형으로 꾸미고 있다. 그러므로 천장의 동서 양면이 윗부분에서 내경하여 합하여지도록 하였다. 널길[羨道]은 널방의 남벽에 설치하고 있는데 널길의 동서쪽에 각기 대판석 1매를 세워 벽면석을 이루게 한 후, 천장을 1매의 판석으로 꾸미고 있다. 아울러 널길과 남벽 간에는 문틀이 시설되고 있다. 그리고 이 문틀의 외부에서 널방을 막는 문비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신관리석실고분은 동일 형식으로 구릉상에 남∼북 방향으로 서로 가까이 2기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중 북쪽에 있는 1호분은 거의 원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호분은 파괴가 심하고 매몰되어 있어 지표에서의 확인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 고분은 백제 사비기의 전형적인 돌방인 능산리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교촌리 46호분과 함께 공주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당시 무덤 축조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