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과실책임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자기의 고의 또는 과실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자기책임의 원칙’이라고도 하며, 근대 민법의 기본 원칙의 하나이다.
미성년자나 피용자(被傭者)의 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감독의무자나 사용자가 책임을 지는 경우에도 이는 자신의 과실, 즉 감독의무 위반에 대한 자기책임으로 구성된다.
고대에는 행위와 손해 사이에 직접 또는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으면 그것으로 행위자가 그 손해의 배상책임을 지게 된다는 결과책임주의 내지 원인주의를 채택하였으나, 로마시대 비잔틴 법학자들에 의하여 이 과실책임의 원칙이 인정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원래는 결과책임의 원칙이 지배적이었으나, 12∼16세기에 걸쳐 로마법을 계수함으로써 과실책임의 원칙이 확립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과실은 고의도 포함한 유책성(有責性)을 의미한다.
행위자에 대하여 인적 비난을 가하여 형벌을 과하는 형사법에서는 원칙적으로 고의의 행위만을 처벌하므로, 고의와 과실은 책임요건으로서 엄격히 구분된다.
그러나 민사법상의 손해배상책임에 있어서는 발생한 손해를 누구에게 어느만큼 부담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심과제이기 때문에, 고의에 의한 가해와 과실에 의한 가해 사이에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고의가 있으면 물론이고, 적어도 가벼운 추상적 과실이 있으면 배상책임이 발생한다고 하는 의미로서 과실책임이라 한다.
여기서 과실은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을 말하며, 그 전제가 되는 주의의무의 정도에 따라 구체적 과실과 추상적 과실로 나누어진다. 구체적 과실이라는 것은 그 행위자가 자기의 주의능력으로 그 손해의 발생을 방지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지하지 않은 경우에만 인정되는 과실이다.
그리고 추상적 과실이라는 것은 표준인으로서의 주의를 행위자에게 요구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인정되는 과실이다. 추상적 과실은 구체적인 사람에 따른 주의능력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구체적 과실보다 엄격한 책임요건이다.
사람은 다른 행위자가 항상 표준인으로서의 주의의무를 지켜 행위한다고 신뢰할 때 안심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므로, 손해배상법은 원칙적으로 주의력이 뒤떨어진 자에게도 일률적으로 이러한 객관적 주의의무를 과하여 그것을 게을리하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한다.
한편, 결과책임의 원칙에 따르면, 아무리 주의를 다하였더라도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였다고 하는 사실로 그 배상책임을 지게 되는데, 인간의 사회활동은 항상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은 항상 책임을 부담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 위험을 면하기 위하여는 부득이 그 사회활동을 억제할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자유로운 생산과 거래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그러나 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르면 객관적 주의의무를 지키고 있으면, 비록 자기의 사회활동으로부터 손해가 발생하였다 할지라도 배상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 즉 자유경쟁이 보장되게 된다.
계약자유의 원칙이 사람의 자유로운 거래활동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데 비하여, 이 원칙은 그것을 소극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 원칙은 이윤의 추구를 지향하는 인간의 의사활동을 자유방임하는 근대 자본주의의 성립과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며, 근대 손해배상법의 대원칙으로 채택되어 왔다.
그러나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경제조직이 고도로 성장한 오늘날 위험성 있는 사업을 하는 기업이 등장하였고, 대기업은 많은 이익을 얻음에도 불구하고 무과실의 경우 배상책임을 면하게 되므로, 무과실의 피해자가 보호되지 못한다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과실책임의 원칙에 대하여 비판이 가하여지고 무과실책임이 대두하게 되었다.
특히, 각종 특별법에 따라 자동차·철도·항공기·광산·원자력·오염물질 등과 관련된 인적 손해에 대하여는 가해자의 과실유무를 묻지 않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무과실책임원칙이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과실책임원칙이 손해배상법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