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식(曺晩植)을 회장으로 1924년 3월 창립되어 평양의 동아일보사 지국 안에 본부를 두었다. 회원수는 1백여명이었다.
체육회의 운영은 회원의 의무금(義務金)과 일시금 10원(圓), 특별회원의 찬조금으로 충당하였으나, 경영상 최대의 재원을 전 조선축구대회에서 마련하고, 기타 약간을 여러 가지 연중사업의 입장료 수입에서 얻었다. 관서체육회는 한 지방의 체육회의 수준을 넘어선, 당시 경성의 조선체육회와 함께 조선체육의 쌍벽을 이루는 단체였다.
이 회는 지금까지 조선체육계 발전의 공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연 1회에 걸쳐 기술과 성품 및 행동 등 기타 각 방면에 걸쳐 모범이 될 만한 선수를 선발하여 표창하였다.
그 자격자의 추천은 최능진(崔能鎭)·강증구(姜增求)·차재일(車在溢) 등이 하였다. 연중행사로는 전 조선빙상경기대회(1월)·전 조선축구대회(5월)·전 조선씨름대회(6월)·전 조선수상경기대회(7월)·서조선야구대회(8월)·관서체육회체육대회(9월)·전 평양농구연맹전(10월)·전 조선탁구대회(11월) 등이 있었다.
이상의 여러 가지 연중사업의 진행에 만전을 기하기 위하여 이사 외에 각 개최사업 진행계를 설치하여 계원은 해당 책임부를 위하여 특별한 연구를 하도록 하였다.
이 밖에도 부대사업으로 덴마크의 보건체조를 보급시키기 위하여 동명체조단(東明體操團)을 조직하여 남녀노소가 다 같이 참여할 수 있게 하였고, 여름철에는 대동강 모래사장에서 일광욕과 수영강습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