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성덕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처녀 성덕이 창건한 사찰.
내용
「성덕산관음사사적」에 의하면, 옛날 충청도 대흥 땅에 장님 원량(元良)이 살았다. 그에게 홍장(洪莊)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용모가 수려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마을 어귀를 지나다가 승려 성공(性空)을 만났는데, 그가 장님 원량에게 큰절을 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간밤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오늘 마을에서 장님을 만날 텐데 그가 대화주(大化主)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원량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설명하였으나 승려는 한사코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부녀가 함께 고민하고 있는데, 저녁 무렵 진나라 사신이 찾아왔다. 사신이 말하기를, 진나라 혜제(惠帝)가 새 황후 될 분이 동국(東國)에 있을 것이니 가보라고 하여 배를 타고 포구에 이르렀는데,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이 집으로 인도되었다고 하였다.
부녀는 진나라 사신의 예물을 받았으며, 그 예물을 성공에게 시주하여 절을 짓도록 하였다. 창건 후, 성공은 관음보살상을 만들어 모시고 절 이름을 성덕산 관음사라 하였다.
그 뒤 1374년(공민왕 23) 크게 절을 일으키고 원통전(圓通殿)을 중건하였으며, 선원을 중심으로 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6·25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1954년 주지 박창훈(朴昌薰)이 부근의 대은암(大隱庵) 건물을 옮겨와서 원통전을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전 및 2층의 금랑각(錦浪閣)과 산신각 · 요사채 등 7동이 있다. 6·25전쟁 전까지 이 절의 원통전과 금동관음보살좌상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전란 중에 모두 소실되었다. 도량 전체가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내 고장 전통 가꾸기』(곡성군, 1981)
- 『한국사찰전서』상(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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