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창궁입궐일기」는 작자 미상의 조선 후기 역사소설이다. 숙창궁은 홍국영의 누이인 홍씨의 궁호이다. 이 작품은 홍씨가 입궐하는 과정과 이에 따라 홍국영이 득세했다가 실세하는 과정을 서술했다. 당시 홍씨의 입궐을 둘러싼 등장인물의 정신적 고뇌와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표현했으며, 대립 구도를 설정해 서사를 전개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인물의 대립과 심리 변화를 자세히 서술해 역사의 소설화라는 측면에서 소설사적 의의가 있으며, 궁중의 제반 법도와 풍속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어 궁중 문화를 보여 주는 사료로서 가치도 있다.
숙창궁은 정조의 후궁으로 입궐한 홍국영의 누이의 궁호이다. 이 작품은 한 후궁의 입궐 과정을 그린 생생한 실록체 소설로, 세도가 홍국영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무술하유월(戊戌夏六月)에 주3을 입궐하실새”의 첫 대목과 원빈 숙창궁의 입궐이 정조 2년(1778) 여름이라는 실록의 기록이 일치한다.
이 작품에는 겨우 열세 살의 나이로 정조의 후궁에 뽑혀 입궐하는 원빈 홍씨의 입궐례를 전후하여 정조 · 효의왕후(孝懿王后) · 혜경궁(惠慶宮) · 왕대비가 등장한다. 어린 원빈이 입궐하여 주2 효의왕후를 만나려 하자 중궁은 유월의 더위를 핑계로 회피한다.
김대비는 중전에 대한 인사가 늦어지자 입궐한 돈녕 부인을 설득한다. 왕은 첩을 들이는 심정과 같고, 중전 역시 인사를 미루다가 마지못해 납폐례를 받고 대비전과 혜경궁에게 예를 드린 후 입궐 의식이 끝난다.
효의왕후에게 후사(後嗣)가 없다 하여 후궁을 맞아들이게 한 것은, 역사 기록에 따르면 영조 계비 김대비의 지교에 의한 것이다. 김대비는 곧 정순왕후로, 이 작품에서도 숙창궁의 호를 김대비가 내리며, 혜경궁은 효의왕후 편인 듯한 인상을 준다.
정조가 등극한 후, 홍국영이 세도를 잡자 효의왕후에게 후사가 없음을 빌미로 13세의 제 누이를 후궁으로 들인다. 그리고 누이가 죽자 다시 은언군(恩彦君)의 아들 담(湛)을 원빈의 양자로 삼고, 완풍군(完豊君)이라 칭한다. 그러나 끝내는 그도 유폐시켜 자살하게 한다.
이 일이 효의왕후의 노여움을 사자, 원빈의 죽음이 효의왕후의 음모 때문이라며 수라에 비상을 타서 왕비 독살을 시도한다. 이 사실이 탄로나자 정조도 어쩔 수 없이 홍국영의 가산을 몰수하고 홍국영을 강릉으로 내쫓는다. 홍국영의 세도정치는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작품에는 특히 당시 원빈의 입궐 과정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정신적 갈등과 변천 과정을 소상하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대가족제도의 표본인 궁중의 제반 법도와 의식 · 풍속 등을 알아보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 이 작품은 문학사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일반적으로 고전소설에서 역사의 수용은 ‘체험의 역사’·‘전언의 역사’·‘기록의 역사’로 나타난다. 이 작품은 역사와 부합하는 대목이 많고 궁중 인물의 심리묘사가 매우 자세한 점, 작가의 주관이 들어간 점으로 미뤄 볼 때 ‘체험의 역사’를 소설화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밖에 궁중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는 「계축일기(癸丑日記)」 · 「계해반정록(癸亥反正錄)」 ·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 「한중록(閑中錄)」이 있다. 이 작품은 한 세도가 집안의 여성이 후궁으로 입궐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여러 가지 갈등과 인물 심리를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는 점, 왕실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있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