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남정기 ()

고전산문
작품
조선 후기, 서포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고전소설.
이칭
이칭
남정기(金萬重), 사씨전(謝氏傳)
작품/문학
작가
김만중(金萬重)
원작자
김만중(金萬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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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사씨남정기」는 조선 후기에 서포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고전소설이다. 사씨가 교채란의 음모로 인해 시댁에서 쫓겨나 온갖 역경을 딛고 시댁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사씨의 행적을 통해 당시 조선 사회에서 바라던 이상적인 여성상을 그리고 있다. 가정소설·규범소설·세정소설 등 다양하게 분류되며, 이후 창작된 소설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정의
조선 후기, 서포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고전소설.
이본 현황

4책본 · 3책본 · 2책본 · 1책본이 있다. 국문본(國文本)으로 목판본(木版本) · ( 경판(京板)) · 필사본(筆寫本) · 활자본(活字本)이 있고, 김춘택(金春澤)의 한역본이 있다. ‘남정기(南征記)’ · ‘사씨전(謝氏傳)’은 이 작품의 다른 이름이다.

내용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年間)에 금릉(金陵) 순천부에 사는 유현(劉炫)이라는 명신(名臣)은 늦게서야 아들 연수(延壽)를 얻는다. 유현의 부인 최씨는 유연수를 낳고 세상을 떠난다.

유연수는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壯元及第)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아직 나이가 어리므로 10년을 더 수학(修學)하고 나서 관직(官職)에 나아가겠다고 한다. 천자(天子)는 특별히 본직(本職)을 띠고 유연수에게 6년 동안의 여가(餘暇)를 준다.

유연수는 덕성(德性)과 재주 · 학식(學識)을 겸비(兼備)한 사정옥(謝貞玉)과 혼인한다. 사씨는 유연수와의 금슬(琴瑟)이 좋았으나, 9년이 지나도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이에 사씨는 남편에게 새로이 여자를 얻기를 권한다. 유연수는 사씨의 권유를 거절하다가, 사씨의 거듭된 설득에 마지못해 교채란(喬彩鸞)을 새 여자로 맞아들인다.

교씨는 천성(天性)이 간악(奸惡)하고 질투와 시기심(猜忌心)이 강한 여자로, 겉으로는 사씨를 존경하는 척하나 속으로는 증오한다. 그러던 중 교씨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면서, 자기가 본처(本妻)가 되려고 마음먹는다. 이를 위해 교씨는 문객(門客) 동청(董淸)과 모의(謀議)하여 남편 유연수에게 사씨를 모함(謀陷)한다.

유연수는 처음에 교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교씨가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이고 그 죄를 사씨에게 뒤집어씌우자, 유연수는 사씨를 집에서 내쫓고 교씨를 본처로 맞이한다. 교씨의 간악함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교씨는 문객 동청과 간통(姦通)하면서, 유연수의 전 재산을 탈취(奪取)하여 동청과 도망가서 같이 살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동청은 유연수를 천자에게 참소하여 유배(流配)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유연수를 고발한 공으로 지방관(地方官)이 된 동청은 교씨와 함께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 이때 조정(朝廷)에서는 유연수에 대한 혐의(嫌疑)를 풀어 그를 다시 불러들이고, 충신(忠臣)을 참소한 동청을 처형하기로 한다.

유배당한 유연수는 비로소 교씨와 동청의 간계(奸計)에 속은 것을 깨닫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친다.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온 유연수는 사방으로 탐문(探問)하여 사씨의 행방을 찾는다.

한편, 남편 유연수가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사씨는 산사(山寺)에서 나와 남편을 찾으러 나선다. 사씨와 유연수는 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다. 유연수는 사씨에게 지난날 자기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간악한 교씨와 동청을 잡아 처형하였다. 그리고 사씨를 다시 본처로 맞이한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숙종인현왕후(仁顯王后)를 폐출(廢黜)하고 희빈 장씨(禧嬪張氏)를 중전으로 책봉(冊封)한 사건을 두고, 숙종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모든 것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도록 만들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수법을 끌어와서 쓴 폭로 · 풍간(諷諫)소설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현명한 며느리 사정옥(사씨)를 내세워 유씨 집안의 가정사(家庭事)를 다루고 있으므로, 가정소설로도 분류할 수 있다.

작가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이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는 일반적으로 쟁총(爭寵)으로 보고 있으나, 오히려 사씨의 덕(德)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겠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성혼(成婚) 과정에서 매파(媒婆)가 사씨의 미색(美色)을 칭찬하자 유현은 덕을 강조하였고, 또 사씨가 남편 유연수에게 소실(小室)을 얻도록 주선(周旋)하는 것은 부녀자(婦女子)로서의 덕행[婦德]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리고 교씨의 간교(奸巧)로 인해 시가(媤家)에서 쫓겨난 사씨가 친정(親庭)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부모의 산소에서 지내는 것은 끝까지 덕행을 실천하려는 강인한 의지의 발로(發露)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쟁총형의 가정소설이면서 인현왕후 민씨의 폐출이 부당함을 풍간하기 위한 풍간소설이다.

한편, 이 작품은 세속적(世俗的)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악인의 면모와 행동이 서사상 큰 비중을 차지하며 구체적으로 제시된 최초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교채란(교씨) · 동청 등 악인을 통해 인간의 현실적(現實的) · 세속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악인의 악행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며, 세속의 인간이 지닐 법한 욕망을 악인으로 그럴싸하게 드러내고 있는 점에서 세정소설의 면모 역시 보인다.

인물 구성을 보면, 부인 사씨는 고매(高邁)한 인덕(仁德)의 소유자로 설정해 놓았지만, 첩(妾)은 간교한 여인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악한 여인을 선한 여인과 대립시킴으써 여자 주인공의 인격을 강조하고 있다. 유연수의 숙모(叔母)인 두 부인은 선악을 판단하는 판별자이면서, 다가올 일을 암시하는 복선(伏線)이라는 기교적(技巧的)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소설은 구성적인 면에 있어서, 다른 고전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사건 전개에 큰 구실을 한다. 사씨는 시부모의 묘소(墓所)로 쫓겨나 있을 무렵 위조된 두 부인의 편지를 받는다. 사씨가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이었던 중에, 사씨의 꿈에 시어머니 최씨가 나타난다. 그 덕분에 사씨는 위기를 모면(謀免)하게 된다.

여승(女僧) 묘혜가 사씨와 상봉(相逢)하여 사씨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도 꿈의 계시(啓示) 때문이었다. 유연수의 중병을 고치는 일, 위기에서 구출되는 일 등 모두가 꿈 덕분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꿈을 활용함으로써 당시 독자들의 흥미를 충족하면서도,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문학적 재미와 함께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실제적(實際的)인 배경은 숙종의 인현왕후 폐출 사건에 있으나, 소설 내용상의 배경은 중국 명나라 시대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날카로운 현실 저항 의식을 가리기 위함일 것이다.

이 소설은 이러한 목적의식 때문에 인물의 배치나 사건의 전개에 어떤 한계를 주어 작품의 문학성(文學性)이 위축될 위험을 내포(內包)하고 있으나, 김만중이 작가로서 지닌 역량(力量)은 이를 훌륭히 극복하여 작품으로서의 성과를 크게 발휘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사씨남정기」(『판각본 고소설전집』 4,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73)
「사씨남정기」(『구활자본 고소설전집』 4, 인천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3)

논문

김수연, 「동아시아 서사전통과 세정소설(世情小說)」(『동악어문학』 59, 동악어문학회, 2012)
김현룡, 「사씨남정기 연구」(건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6)
류준경, 「<사씨남정기>를 통해 본 소설사의 전변의 한 국면 -사씨 형상의 형성배경과 의미」(『국문학연구』 31, 국문학회, 2015)
유쾌제, 「사씨남정기 연구」(『숭전어문학』 1, 숭전대학교, 1972)
이원수, 「사씨남정기의 반성적 고찰」(『문학과 언어』 3, 문학과 언어연구회, 1982)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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