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몽유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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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작품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칭
이칭
문성궁몽유록(文成宮夢遊錄)
내용 요약

「사수몽유록」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꿈에 공자가 다스리는 소국에 간 몽유자가, 소국에서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한 몽유록이다. 제목의 '사수'는 공자가 다스리는 소국이 있는 곳이다. 양주·묵적·장자·석가 등 이단이 소국을 침입하자, 소국의 왕 공자는 한유· 맹자· 주희 등 유학자를 보내 격퇴한다. 이 작품은 공자를 왕으로, 유학자를 신하로 그려 낸 소국 및 이단과의 전투를 내세워 유교의 우위를 주장한다.

목차
정의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내용

1권 1책. 한글 필사본(筆寫本). 1940년 『인문평론(人文評論)』 2권 6호에 이명선(李明善)이 소개한 필사본이 있다. 장서각에 있는 「문성궁몽유록(文成宮夢遊錄)」은 이 작품의 이본(異本)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되는 ‘사수(泗水)’는 공자(孔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작자의 창작 의도를 암시한다. 대개의 몽유록계 작품에서는 작자나 주93가 현세(現世)에서의 실의(失意)를 꿈을 통해 회복한다. 이에 비하여, 이 작품에서는 개인을 떠나 공자를 비롯한 고금(古今)의 여러 현인(賢人)의 승리를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도교의 박멸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목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원(中原)의 한 유생(儒生)은, 하늘이 공자를 비롯한 수많은 대현(大賢)을 인간 세상에 보내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천하가 방황하고 있음을 원망하며 한탄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서 유생은 주11이 된 공자가 있는 사수 유역의 소왕국(素王國)으로 인도된다.

이 왕국에는 맹자(孟子; 맹가(孟軻)) · 주자(朱子; 주희(朱熹)) · 주14 · 자건(子騫) · 공급(孔伋) · 주15 · 주16 · 백우(伯牛) · 주17 · 주18 · 주19 · 주20 · 주94 · 주21 · 유자(有子) · 주22 · 주23 · 주24 · 주25 등 역대에 이름난 현인들이 중요한 관직에 자리를 잡은 신하로 있었다. 우리나라 유학자는 설총(薛聰) · 최치원(崔致遠) · 안향(安珦) · 정몽주(鄭夢周) 등이 반열(班列)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홀연 우편으로 편지 하나가 도착하여, 주31주32의 군사가 침공했다고 알린다. 문선왕(공자)은 맹가를 출전시켜 이들을 물리친다. 이어 노담(老聃: 노자(老子))이 열어구(列禦寇)와 장주(莊周; 장자(莊子))를 거느리고 소왕국을 침범해 와, 주35과 장재를 출전시키니 노담의 군사가 대패하여 달아났다. 또다시 천축국(天竺國)에서 석가의 군사가 중원을 공격하자, 공자는 한유를 출전시켜 무려 백여 합의 접전 끝에 석가의 군사를 격퇴한다.

패배한 석가의 군사가 노담의 군사와 연합하여 최후의 공격을 해 오자, 문선왕은 용맹한 맹가를 출전시킨다. 맹가는 장재 · 주희 · 정호 · 정이 · 한유 등을 이끌고 나가 대전한다.

처음에는 맹가와 석가의 논쟁이 벌어졌는데, 논쟁에서 진 석가가 출전하였으나 대패하여 서역(西域)으로 달아난다. 노담의 군사도 대패하여 달아나니, 전후 4차례의 전쟁이 끝난다.

문선왕은 여세(餘勢)를 몰아, 역대의 제왕(帝王) 중 왕으로서의 도리를 버리를 버리고 주43를 썼거나 주95 정책을 펼친 제왕들, 곧 진시황(秦始皇)을 비롯한 한무제(漢武帝) · 한명제(漢明帝) · 당태종(唐太宗) · 송신종(宋神宗) · 송효종(宋孝宗) · 명고종(明高宗) 등을 불러서 질책했다. 그러자 이들 제왕은 모두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그 뒤 문선왕은 여러 신하와 더불어 유교의 ‘도(道)’를 강의하고 토론하며, 무엇보다도 ‘인(仁)’을 중시할 것을 강조한다. 이후 여러 신하의 희망을 들은 다음, 자공에게 역대의 인물들을 논의하고 평가하게 하며, 끝으로 자공에게 자신을 평가해 달라고 요청한다.

자공은 문선왕이 이 세상에 탄생하여 풍류와 예도(禮道)를 편 것이 여러 세대의 왕에게 큰 교훈이 되며, 요(堯) · 순(舜)에 견줄 만하다고 했다.

문선왕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여 큰 잔치를 베풀자, 한유는 오늘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기록하여 인간에게 전해야 한다고 아뢴다. 문선왕은 한유가 쓴 소왕국의 기록을 유생에게 주며 인간 세상에 전하라는 부탁을 한다. 유생이 그 문서를 받아서 섬돌을 내려오다가 발을 잘못 디뎌 잠에서 깨니 꿈이었다.

창작 방식

이 작품은 『서경』에 나타난 창업(創業)· 조각(組閣) · 시연(侍宴)등을 차용(借用)하여, 소국(소왕국)의 창업 · 수성(守城) · 전도(傳道) · 안정(安定)을 서술했다.

소국은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현(聖賢)이 다스리는 이상향(理想鄕)이었다. 하지만 소국은 완성형으로 제시되지 않고 여러 국면(局面)을 거쳐 발전했다. 발전 국면은 창업 · 수성 · 전도 · 안정으로 나뉘었다. 창업은 조각, 수성은 전쟁, 전도는 문답(問答), 안정은 시연으로 표현되었다.

이 작품은 창업 국면에서 『서경』 속 조각을 모방했다. 이로써 역사 속 문명의 여명기(黎明期)와 꿈속 유자 나라의 여명기를 일치시켰다. 또 『서경』 「익직」을 모방한 시연으로써 ‘안정’의 국면을 표현하면서 요순시절(堯舜時節)에 비유했다.

‘수성’의 국면에서 소국 유자는 유교의 교리를 내세워, 유교 이외의 여러 이단(異端)을 물리쳤다. 이로써 ‘수성의 어려움’과 ‘내각(內閣)의 역량’을 함께 보여 주었다. 전도는 임금과 신하 사이 문답으로 나타났다. 임금이었던 공자는 스승으로 거듭나 내각에 정치적 · 학술적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에서 유교 중심의 왕국을 침공한 양 · 묵의 군사를 맹자가 격퇴하고, 노 · 장의 군사를 사마광과 장재가 격파하고, 석가의 군사를 한유가 격퇴한 것은 그들이 각각 양주 · 묵자 · 노자 · 장자 · 석가의 학설(學說)을 공격한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유교가 어느 학설보다도 가장 위대하고 우수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관념(觀念)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 역대의 제왕 중에서 패도를 쓴 왕들을 불러 질책하는 장면은 유교적인 왕도를 이상적인 정치로 여기고 있는 유학자들의 정치 철학(政治哲學)을 제시해 본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의 서사 구조(敍事構造)는 알레고리(allegory, 주80로서의 면모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노 · 불 · 양 · 묵은 특정한 역사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그들로써 대표되는 철학 사상의 상징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며, 그들이 유가 왕국과 벌이는 극적 대립 역시 상징적 · 비유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향락적(享樂的) · 반동적(反動的) · 이념(理念) 옹호적(擁護的)인 유형적 특질로 ‘이념 제시형(理念提示型)’ 몽유록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유형에 속하는 심의(沈義)「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에서는 환멸(幻滅)을 통한 환상과 현실의 대조가 강조되고 있음에 반해서, 이 작품에는 그러한 환멸이 없고 오히려 유교 정치의 이념은 꼭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편 「대관재몽유록」은 서술 구조상 작자가 꿈속 세계에서 주인공 구실을 하는 ‘주인공형(主人公型)’ 몽유록이다. 이에 반해, 「사수몽유록」은 몽유자의 꿈속 상황 개입이 매우 많이 축소되어 있어 목격담(目擊談)의 성격을 띤 ‘방관자형(傍觀者型)’ 몽유록에 해당되고 있다.

이 「사수몽유록」은 점차 불교와 도교에 물들어 해이(解弛)해지고 있는 유교의 도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의식이 강하게 드러난 소설 작품으로, 공자를 비롯한 역대의 유학자들이 생전에 이룩하지 못한 정치적인 이상을 꿈속의 세계를 통해 주96으로 표출해 내었다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기동, 『이조시대 소설의 연구』(성문각, 1974)

논문

김정녀, 「朝鮮後期 夢遊錄의 展開 樣相과 小說史的 位相」(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양언석, 「< 사수몽유록 > 연구」(『연민학지』 4, 연민학회, 1996)
장덕순, 「몽유록소고」(『동방학지』 4,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59)
정학성, 「몽유록의 역사의식과 유형적 특질」(『관악어문연구』 2,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77)
차용주, 「몽유록계 소설 연구」(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0)
홍현성, 「<사수몽유록> 창작방식 연구」(『고소설연구』 46, 한국고소설학회, 2018)
주석
주1

손으로 써서 만든 책. 우리말샘

주2

문학 작품 따위에서 기본적인 내용은 같으면서도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는 책. 우리말샘

주3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ㆍ학자(B.C.551~B.C.479).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노나라 사람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인(仁)을 정치와 윤리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하여 덕치 정치를 강조하였다. 만년에는 교육에 전념하여 3,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 내고, ≪시경≫과 ≪서경≫ 등의 중국 고전을 정리하였다. 제자들이 엮은 ≪논어≫에 그의 언행과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말샘

주8

중국의 황허강 중류의 남부 지역. 흔히 한때 군웅이 할거했던 중국의 중심부나 중국 땅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9

유학(儒學)을 공부하는 선비. 우리말샘

주10

매우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 우리말샘

주11

‘공자’의 시호(諡號). 중국 당나라 현종이 내렸다. 우리말샘

주12

중국 전국 시대의 사상가(B.C.372~B.C.289). 자는 자여(子輿)ㆍ자거(子車). 공자의 인(仁) 사상을 발전시켜 ‘성선설’을 주장하였으며, 인의의 정치를 권하였다. 유학의 정통으로 숭앙되며, ‘아성’이라 불린다. 우리말샘

주14

‘안회’의 성(姓)과 자(字)를 함께 이르는 이름. 우리말샘

주15

공자의 제자 ‘염옹’의 자. 우리말샘

주16

중국 노나라의 유학자(B.C.506~B.C.436?). 자는 자여(子輿). 공자의 덕행과 사상을 조술(祖述)하여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 전하였다. 후세 사람이 높여 증자(曾子)라고 일컬었으며, 저서에 ≪증자≫, ≪효경≫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7

중국 춘추 시대 위나라의 유학자(B.C.520?~B.C.456?).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언어에 뛰어났으며,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宰相)을 지냈다. 우리말샘

주18

중국 북송의 학자(1011~1077).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선생(安樂先生). 시호는 강절(康節). 상수(象數)에 의한 신비적 우주관과 자연 철학을 제창하였다. 저서에 ≪관물편(觀物篇)≫,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황극경세서≫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9

중국 삼국 시대 촉한의 정치가(181~234). 자(字)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 유비를 도와 오(吳)나라와 연합하여 조조(曹操)의 위(魏)나라 군사를 대파하고 파촉(巴蜀)을 얻어 촉한을 세웠다. 유비가 죽은 후에 무향후(武鄕侯)로서 남방의 만족(蠻族)을 정벌하고, 위나라 사마의와 대전 중에 병사하였다. 우리말샘

주20

중국 북송의 유학자(1020~1077). 자는 자후(子厚). 호는 횡거(橫渠). 유가와 도가의 사상을 조화시켜 우주의 일원적 해석을 설파함으로써 이정ㆍ주자의 학설에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역설(易說)≫, ≪서명(西銘)≫, ≪동명(東銘)≫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1

중국 북송의 유학자(1033~1107). 자는 정숙(正叔). 호는 이천(伊川). 최초로 이기(理氣)의 철학을 내세우고 유교 도덕에 철학적 기초를 부여하여, 형인 정호(程顥)와 함께 이정자(二程子)라고 불린다. 저서에 ≪이천선생문집≫, 공저인 ≪이정전서(二程全書)≫가 있다. 우리말샘

주22

중국 북송의 유학자(1017~1073). 자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濂溪). 당대(唐代)의 경전 주석의 경향에서 벗어나 불교와 도교의 이치를 응용한 유교 철학을 창시하였다. 저서에 ≪태극도설≫, ≪통서≫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3

중국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유학자(B.C.506~B.C.445?). 본명은 언언(言偃).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자하(子夏)와 더불어 문학에 뛰어났고 예(禮)의 사상이 투철하였다. 우리말샘

주24

중국 북송의 유학자(1032~1085). 자는 백순(伯淳). 호는 명도(明道). 아우 이(頥)와 함께 이정자(二程子)로 불리며, 도덕설을 주장하여 우주의 본성과 사람의 성(性)이 본래 동일하다고 보았다. 저서에 ≪정성서(定性書)≫, ≪식인편(識仁篇)≫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5

중국 당나라의 문인ㆍ정치가(768~824). 자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변려문을 비판하고 고문(古文)을 주장하였다. 시문집에 ≪창려선생집≫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8

예전에, ‘우리나라’를 달리 이르던 말. 우리나라가 중국의 동쪽에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우리말샘

주30

품계나 신분, 등급의 차례. 우리말샘

주31

중국 전국 시대의 학자(B.C.440?~B.C.360?). 노자 사상의 일단을 이은 염세적 인생관으로 자기중심적인 쾌락주의를 주장하였다. 우리말샘

주32

‘묵자’의 본명. 우리말샘

주35

중국 북송 때의 학자ㆍ정치가(1019~1086). 자는 군실(君實). 호는 우부(迂夫)ㆍ우수(迂叟).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고도 한다. 신종 초에 왕안석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여 은퇴하고 철종 때에 재상이 되자, 신법을 폐하고 구법(舊法)으로 통치하였다. 저서에 ≪자치통감≫, ≪사마문정공집(司馬文正公集)≫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36

불교의 개조. 기원전 624년에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바스투 성에서 슈도다나와 마야 부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29세 때에 출가하여 35세에 득도하였다. 그 후 녹야원에서 다섯 수행자를 교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성립하였다. 45년 동안 인도 각지를 다니며 포교하다가 80세에 입적하였다. 우리말샘

주39

중국의 서쪽에 있던 여러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 넓게는 중앙아시아ㆍ서부 아시아ㆍ인도를 포함하지만, 좁게는 지금의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톈산 남로(天山南路)에 해당하는 타림 분지를 가리키는데, 한(漢)나라 때에는 36국이 있었으며, 동서 무역의 중요한 교통로로 문화 교류에 공헌이 컸다. 우리말샘

주43

인의(仁義)를 가볍게 여기고 무력이나 권모술수로써 공리(功利)만을 꾀하는 일. 우리말샘

주44

중국 진(秦)나라의 제1대 황제(B.C.259~B.C.210). 이름은 정(政).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하고 스스로 시황제라 칭하였다. 중앙 집권을 확립하고, 도량형ㆍ화폐의 통일, 만리장성의 증축, 아방궁의 축조, 분서갱유 따위로 위세를 떨쳤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247~기원전 210년이다. 우리말샘

주50

중국 고대 전설상의 임금(?~?). 성덕을 갖춘 이상적인 군주로 꼽히며, 역법을 정하고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순(舜)을 등용하였다. 우리말샘

주51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임금. 성은 우(虞)ㆍ유우(有虞). 이름은 중화(重華). 요의 뒤를 이어 천하를 잘 다스려 태평 시대를 이루었다. 우리말샘

주54

집채의 앞뒤에 오르내릴 수 있게 놓은 돌층계. 우리말샘

주55

나라나 왕조 따위를 처음으로 세움. 우리말샘

주56

내각을 조직함. 우리말샘

주57

대궐 안의 잔치에 모든 신하가 자리를 함께함. 또는 그 잔치. 우리말샘

주59

적의 공격이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성을 지킴. 우리말샘

주66

새로운 시대나 새로운 문화 운동 따위가 시작되는 시기. 우리말샘

주67

요임금과 순임금이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던 태평한 시절. 치세(治世)의 모범으로 삼는다. 우리말샘

주80

어떤 한 주제 A를 말하기 위하여 다른 주제 B를 사용하여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 은유법과 유사한 표현 기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은유법이 하나의 단어나 하나의 문장과 같은 작은 단위에서 구사되는 표현 기교인 반면,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법으로 관철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우리말샘

주90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1130~1200). 자는 원회(元晦)ㆍ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ㆍ회옹(晦翁)ㆍ운곡산인(雲谷山人)ㆍ둔옹(遯翁). 도학(道學)과 이학(理學)을 합친 이른바 송학(宋學)을 집대성하였다. ‘주자’라고 높여 이르며, 학문을 주자학이라고 한다. 주요 저서에 ≪시전≫, ≪사서집주(四書集註)≫, ≪근사록≫, ≪자치통감강목≫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91

중국 전국 시대의 사상가(B.C.365?~B.C.270?). 이름은 주(周). 도가 사상의 중심인물로, 유교의 인위적인 예교(禮敎)를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자연 철학을 제창하였다. 현종이 ‘남화진인’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저서에 ≪장자≫가 있다. 우리말샘

주92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耼)ㆍ백양(伯陽). 도가(道家)의 시조로서, 상식적인 인의와 도덕에 구애되지 않고 만물의 근원인 도를 좇아서 살 것을 역설하고, 무위자연을 존중하였다. 우리말샘

주93

몽유록에서 꿈을 꾸는 사람.

주94

중국 춘추 시대의 유학자(B.C.507~B.C.420?). 본명은 복상(卜商). 공자의 제자로서 십철(十哲)의 한 사람이다. 위나라 문후(文侯)의 스승으로 시와 예(禮)에 능통하였는데, 특히 예의 객관적 형식을 존중하였다. 우리말샘

주95

불교를 높이고 유교를 배척함.

주96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이솝 이야기≫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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