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10월에 창간, 1941년 4월에 폐간되었다. 편집, 발행인은 최재서(崔載瑞)이다. 창간 후 권두언에서 문학자들도 건설사업에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일본의 침략전쟁을 긍정하고 합리화하는 데 앞장을 섰다.
1941년 2월호에 「전환기의 문화이론」을 최재서가 발표하고, 이어서 1941년 4월호에 「문학정신의 전환」이란 글을 발표하여 ‘문학정신의 국민적 전환’을 강조하였다. 곧, 전환의 목표를 문학 내지는 문화의 국민화(國民化 : 日本의 뜻)에 두었다.
이는 이른바 ‘국민문학’의 건설을 뜻하는 것인데, 최재서는 1941년 4월호로 『인문평론』을 폐간하고, 1941년 11월부터 『국민문학(國民文學)』을 편집, 발간하여 ‘국민문학’의 구체적인 문제를 제시, 실천하였다.
『인문평론』은 창간당시부터 일본의 침략정책에 적극 호응하였고, 계속해서 ‘국민문학의 선도적 역할’을 실천하다가 월간지 『국민문학』에 그 사명을 계승시켰다.
『인문평론』은 전기문학(前期文學)에서 암흑기의 친일문학으로 연결되는 가교의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문단에 문학비평의 새 방법을 모색하느라고 노력하여 몇몇 문학비평가를 등장시켰고, 특히 서구의 문학비평이론을 도입, 소개한 업적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