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팔난기」는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제명은 주인공 황극(黃極)이 '남만을 평정하기까지 겪는 여덟 가지 고난에 관한 기록'이라는 의미다. 이 작품은 오행에 맞춰 황극, 주봉진, 현덕무 등 주요 인물의 인명을 설정하고 여성 영웅의 활약상을 부각한 특징이 있다. 한문으로 창작된 뒤 국문으로 번역 및 개작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남정팔난기」는 한문 필사본, 국문 필사본 · 방각본이 모두 전하는 작품이다. 구활자본으로 1915년 신구서림과 조선서관에서, 1938년 박문서관에서 ‘팔장사전(八壯士傳)’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것이 있다고 하나,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애초 한문본으로 창작되어 국문으로 번역되면서 새로운 인물과 내용이 추가되었다. 개작된 부분을 통해 당시 국문 소설 독자층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다. 또 다양한 이본은 당시 「남정팔난기」의 인기를 잘 보여 준다. 한문본은 일본 오사카 부립박물관(3권 3책)에 소장되어 있다. 한문본은 중국 4대기서인 『수호지』, 『삼국지』, 『서유기』, 『금병매』의 장면과 문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문 필사본을 1종을 제외하고 국문본은 20여 종이 보고되었다.
국문 필사본 가운데 주요 이본으로는 규장각본(5권 5책) · 김동욱 소장본 · 조동필(趙東弼) 소장본(10권 5책) · 박순호(朴順浩) 소장본(10권 10책) · 장서각본(3책) · 성균관대학교 도서관본(5권 5책) · 연세대학교 도서관본(4권 4책) · 일본 동양문고 소장본(14권 14책) 등이 있다. 박순호 소장본은 1986년에 월촌문헌연구소편(月村文獻硏究所編) 『한글필사본고소설자료총서』로 오성사(旿晟社)에서 영인되었다.
국문 필사본 후기에 있는 “밀셩후인 박경희 한묵을 희롱하여 ᄉᆞ젹과 ᄌᆞ최ᄅᆞᆯ 후셰의 오래 젼코져 ᄒᆞ미러니”라는 기록과 작품 내에 “박경희의 ᄌᆞᄂᆞᆫ 공션이오 별호ᄂᆞᆫ 옥쳔산인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작가를 밀성(지금의 밀양) 박씨 후예이면서 자는 공선, 호는 옥천산인 박경희로 보기도 한다.
목판본은 서울에서 판각한 경판(京板)인 김동욱(金東旭) 소장본(현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소장본, 2권 2책)과 영국 대영박물관 소장본(2권 2책)이 있는데, 모두 낙질본이다.
한문본은 황극이 이 소저와 월파를 아내로 삼고 영화를 누리다가 등선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12회가 없이 11회에서 13회로 이어지는데, 필사 실수인지 여부는 확언하기 어렵다. 1회~17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송나라 신무황제 때, 이부시랑을 지내다가 구계촌으로 낙향해서 사는 황희룡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식이 없음을 걱정하다가, 어느 날 신선의 시중을 드는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와서 절하는 꿈을 꾸고 난 뒤에 아들을 얻고서 이름을 극(極)이라고 하였다. 10세에 아버지와 사별한 극은 주봉진과 형제의 결의를 맺고 아버지의 친구인 이문혁의 딸과 약혼한다.
극은 주봉진과 남방을 방랑하며 여덟 번의 난관을 겪던 중에 만난 용진천 · 현덕무 · 호성태들과 형제의 결의를 맺는다. 어떤 동자의 지시에 따라 남화산 도사를 찾아가다가 극과 주봉진은 헤어진다. 극은 남화산 도사를 만나고, 주봉진은 손만흥이라는 도적의 본거지로 가서 극의 어머니인 임 부인을 만난다. 극은 도사의 지시로 양쯔강에 빠진 이문혁의 부인과 자기와 약혼한 이 소저를 구하여 절에 머무르게 하고, 이들의 소식을 전하려고 익주로 가다가 칼과 갑옷을 얻게 된다.
한편, 주봉진은 용진천과 함께 도적을 무찌르고 임 부인을 구출하여 고향으로 모신 다음 익주로 향한다. 극은 송나라를 침범한 남만왕(南蠻王) 맹세웅의 군사를 무찌르는 공을 세우고 대원수가 되었으며, 주봉진과 용진천을 만나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된다. 또, 금병산 도사의 여제자인 월파를 만나 도움을 얻어서 남만왕을 사로잡고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와 만나서 즐겁게 지낸다.
이때 왕이 죽고 적자가 왕위를 계승하자, 연왕으로 봉해진 선왕의 서자가 왕위를 노려 간신인 하증과 역모를 꾸민다. 극 등에게 누명을 씌워 귀양보낸 뒤 왕위를 빼앗자 왕은 복흥도로 피신한다. 황극을 중심으로 주봉진 · 용진천 · 호성태 · 현덕무 등은 월파와 운행자의 계책에 힘입어 연왕의 무리와 싸운다.
연왕은 천봉 도사의 도움을 받았는데 나중에는 호랑이와 인간의 아들인 남성 도사의 도움으로 대적한다. 남성 도사의 계략과 술수가 만만하지 않자, 극은 남화산 도사의 도움으로 남성 도사와 연왕을 죽이고 승리한다.
왕은 장안으로 돌아가고 극은 이 소저와 월파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고 다른 장수들도 각각 부인들을 만났다. 극은 20년 만에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며, 왕은 물론 모두들 아들과 딸을 낳았다. 15세쯤 각각 혼인을 하니 극의 딸이 태자비가 되고 주봉진의 아들이 사위가 되었다. 극이 90세가 넘어서 월파와 함께 남화산 도사의 부름을 받아 각각 태극선과 영선낭이라는 선관이 되었다.
「남정팔난기」는 주인공 황극의 영웅의 일대기를 중심 구조로 하여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킨 작품으로, 주인공이 여러 번의 액운을 만나서 온갖 고생을 한 다음 우여곡절 끝에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유교적인 입신양명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아울러 주인공이 불교와 도교의 도움을 받는 내용을 통해 불교와 도교의 쓰임새에도 주목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부귀영화는 자손대대로 이어지며, 생을 마친 다음에도 도교에서 말하는 선관선녀(仙官仙女)가 되어 생사를 초월한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은 유 · 불 · 도 어느 하나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모두 혼합되어 현세와 내세에서의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간 당대 사람들의 가치관이라 여겨진다.
이 작품에서 독특한 것은 월파와 운행자라는 여성이 황극에게 작전과 계책을 지시하는 숨은 지휘관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성 우위의 사상을 나타내는 내용은 여성 독자를 염두에 둔 흥미 요소로 단순히 파악할 수 있으나, 여성의 능력에 주목하고 그것을 작품 속 세계에서 크게 부각했다는 점에서 유교의 여성관에서 진일보한 부분이 없지 않다. 물론, 여성이 성별을 숨기고 전장에서 활약한다는 설정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남정팔난기」 전체 내용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유불도를 섭렵한 이상적 삶을 환상적 요소를 풍부하게 가미해 그렸으므로, 여성의 활약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연왕 편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남성 도사와 흑선곤의 출생 내력이다. 즉 남성 도사는 남자로 변신한 호랑이가 인간 여자와 교합하여 낳은 아들이고, 흑선곤은 여자로 변신한 곰과 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이러한 변신 모티프는 「단군 신화」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같은 모티프라도 「단군 신화」에서의 변신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성성(神聖性)을 보여 주는 반면, 이 작품에서의 변신은 자연 질서의 파괴라는 점에서 죄악으로 간주되고 그들의 말로 또한 비참하게 된다.
이렇게 이 작품은 전형적인 군담소설이면서도 흥미가 있는 몇 가지의 삽화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반 군담소설과는 달리 분량이 길 뿐만 아니라, 시조 · 한시 · 가사 등의 문예문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