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제22대 정조의 왕비.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또한, 우애가 극진하여 화완옹주(和緩翁主)가 그를 몹시 괴롭혔으나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특히 청연(淸衍)·청선(淸璿) 두 군주(郡主)와는 더욱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청선군주의 상을 당하였을 때는 스스로 슬픔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비통해하였고, 그 자녀들을 자기 자식처럼 보살펴주었다.
성품이 개결(介潔: 성품이 절개가 굳고 깨끗함)하고 사정에 흐르지 않아서 사가(私家)에 내리는 은택을 매우 경계하여 수진궁(壽進宮)과 어의궁(於義宮)에 쓰고 남는 재물이 있어도 궁화(宮貨: 궁궐내에 있는 재물)는 공물이라 하여 사사로이 사가에 물화를 내린 적이 없었다.
자녀를 두지 못한 채 창경궁 자경전(慈慶殿)에서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일생을 검소하게 보냈으며, 생전에 여러 차례 존호(尊號)가 올려졌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시호는 예경자수효의왕후(睿敬慈粹孝懿王后)이고, 능호는 건릉(健陵)으로 경기도 화성군 안룡면 안녕리에 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선원계보(璿源系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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