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왕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제22대 정조의 왕비.
이칭
  • 시호효의(孝懿)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풍(淸風)
  • 사망 연도1821년(순조 21)
  • 성별여성
  • 주요 관직정조(正祖)의 비
  • 출생 연도1753년(영조 29)
  • 출생지한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균 (부산수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화성 융릉과 건릉 중 건릉 미디어 정보

화성 융릉과 건릉 중 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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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제22대 정조의 왕비.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좌참찬 김시묵(金時默)의 딸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증찬성 홍상언(洪商彦)의 딸이다. 한성부 가회방(嘉會坊) 사제(私第)에서 출생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2년(영조 38) 세손빈(世孫嬪)으로 책봉되어 어의동(於義洞) 본궁(本宮)에서 가례(嘉禮)를 올렸고, 1776년 영조가 죽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진봉(進封)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를 지성으로 모시니 궁중에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우애가 극진하여 화완옹주(和緩翁主)가 그를 몹시 괴롭혔으나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특히 청연(淸衍)·청선(淸璿) 두 군주(郡主)와는 더욱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청선군주의 상을 당하였을 때는 스스로 슬픔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비통해하였고, 그 자녀들을 자기 자식처럼 보살펴주었다.

성품이 개결(介潔: 성품이 절개가 굳고 깨끗함)하고 사정에 흐르지 않아서 사가(私家)에 내리는 은택을 매우 경계하여 수진궁(壽進宮)과 어의궁(於義宮)에 쓰고 남는 재물이 있어도 궁화(宮貨: 궁궐내에 있는 재물)는 공물이라 하여 사사로이 사가에 물화를 내린 적이 없었다.

자녀를 두지 못한 채 창경궁 자경전(慈慶殿)에서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일생을 검소하게 보냈으며, 생전에 여러 차례 존호(尊號)가 올려졌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시호는 예경자수효의왕후(睿敬慈粹孝懿王后)이고, 능호는 건릉(健陵)으로 경기도 화성군 안룡면 안녕리에 있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선원계보(璿源系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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