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광산자원의 개발에 따라 형성된 취락.
개설
연원 및 변천
그 중에서도 오늘날의 광산개발과 광산취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기는 일제강점기이고, 그 영향을 가장 현저하게 받은 지역이 태백산지 일대이다. 종업원수 및 석탄생산량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꾸준히 성장하였다. 그러나 1988년에 발효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은 빠른 폐광을 초래하여 현재는 태백시의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와 한보광업소, 삼척시의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만 남아 있다.
내용
이들 세 구성요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는 시설공간이다. 갱구는 광업의 합리적인 운영을 위해서 지하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채굴할 수 있는 장소에 건설된다. 갱구 주변에는 광업에 필요한 일체의 시설이 갖추어진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광부와 자재를 운반하고 석탄을 운송하는 데 필요한 권양기이다. 이것은 광산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경관 요소이다. 이밖에도 기자재 보관소, 공동목욕탕, 창고, 화약고, 철로, 선탄장, 저탄장 등의 설비와 함께 폐석더미 등이 어지럽게 분포한다.
둘째는 거주공간이다. 광부와 그 가족들은 광산이 제공하는 사택에서 거주한다. 사택은 대규모로 건설할 부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개 여러 곳에 산재한다. 노무자들은 광산이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통근한다. 사택은 일제강점기 이래 부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건축자재를 줄이기 위해서 1층의 연립이 주를 이룬다. 1980년대부터는 아파트도 등장한다.
셋째는 상업공간이다. 광부들에게 부여되는 서비스는 1차 생활권에서는 광산의 소비조합이나 사택 단위에서 일상 용품을 판매하는 소규모 잡화점이 있다. 이보다 고차의 서비스는 배후의 시가지에서 제공한다. 상가의 업종구성은 광부들의 소비성향을 반영하여 유흥음식점, 당구장, 이용실·미용실, 의류·신발, 여관·여인숙, 다방, 정육점 등이 다수를 이룬다.
광산취락이 이 같은 모습을 보인 시기는 1970년대와 80년대이다. 주유종탄의 에너지 정책 변화에 따라 1988년에 발효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은 광산의 무더기 폐광을 초래하였다. 여기에다 채탄의 심부화로 채굴 비용이 상승하는 광산 내부의 어려움이 더해져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광부들이 떠나면서 인구는 대폭 감소하고 광산취락은 완전히 소멸하거나 현저히 축소하였다.
광산은 현재 태백시의 장성광업소와 한보광업소, 삼척시의 도계광업소 정도만 남았다. 특히 태백시는 군소의 탄광이 대거 밀집하여 광산도시로 성장한 대표적인 지역인데, 1987년의 인구 120,208명, 종업원 17,972명에서 2009년 현재 인구 51,170명, 종업원 1,562명으로 줄어들었다. 때문에 광산지역사회는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여 경기가 매우 침체되었다. 이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카지노를 유치하고, 스키장이나 골프장을 개설하는 등 지역사회는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옛 광산취락의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정선군 사북읍과 고한읍에는 내국인도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 고객을 위해 조성해 놓은 스키장과 숙소 등의 대규모 이질적인 경관이 주류를 이루고, 읍내에는 유흥업소와 전당포 일색의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고 있다. 광산지역사회 주민들이 카지노에 노출되고 있는 현상은 새로운 지역문제이다. 한편 태백시는 폐광 이후 고원·광광도시로의 모토를 내걸고 있는데, 고원 스포츠 시설, 골프장, 스키장 등은 광산도시와는 거리가 먼 새로운 풍경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광산취락의 공간구조 관한 연구:태백산지 일대를 중심으로」(정암,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 「사북지역의 광사취락에 관한 연구」(정암,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 『日本の鑛山集落』(川崎 茂, 大明堂, 1973)
- 『근세한국산업발달사연구』(고승제, 대동문화사, 1959)
- 『취락지리학』(오홍석, 교학사, 1980)
- 『한국지지총론』(건설부국립지리원, 1980)
- 『신한국지리』(강석오, 대학교재출판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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