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숙종 때부터 전하는 정재(呈才) 중 하나.
내용
인원 구성은 1828년(순조 28) 『진작의궤(進爵儀軌)』의 무도(舞圖)에 의하면 원무(元舞) 2인, 협무(挾舞) 9인씩 두 줄(18인)로 이루어졌으며, 1829년(순조 29) 『진찬의궤(進饌儀軌)』에는 원무 2인, 협무 10인씩 두 줄(20인)로 구성되어 있는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협무의 수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901년(광무 5)의 『국연정재창사초록(國讌呈才唱詞抄錄)』에 의하면 창사는 없고 그 춤만이 전한 것으로 되어 있어, 「광수무」는 숙종 이후 1901년 무렵까지 상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춤의 반주로 쓰이는 음악은 「여민락령(與民樂令)」이었다.
1829년(순조 29) 『진찬의궤』에 의한 무동의 복식은 부용관(芙蓉冠)을 쓰고,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녹색단령(綠色團領)에 화화방보(畫花方補)를 했으며, 두석록정대(豆錫綠鞓帶)를 띠고 흑화를 신었다.
참고문헌
- 『진연의궤』(1719)
- 『국연정재창사초록』(1901)
-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