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무

  • 예술·체육
  • 작품
조선시대 숙종 때부터 전하는 정재(呈才) 중 하나.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사훈 (전 서울대학교, 음악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진찬의궤 / 광수무 미디어 정보

진찬의궤 / 광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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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숙종 때부터 전하는 정재(呈才) 중 하나.

내용

1719년(숙종 45) 경현당(景賢堂)에서 연행된 『진연의궤(進宴儀軌)』의 기록에 의하면 9작(九爵) 중 제3작에는 「초무(初舞)」, 제4작에는 「아박(牙拍)」, 제5작에는 「향발(響鈸)」, 제6작에는 「무고(舞鼓)」, 제7작에는 「광수무(廣袖舞)」를 추고, 이어 「처용무」가 상연되었다.

인원 구성은 1828년(순조 28) 『진작의궤(進爵儀軌)』의 무도(舞圖)에 의하면 원무(元舞) 2인, 협무(挾舞) 9인씩 두 줄(18인)로 이루어졌으며, 1829년(순조 29) 『진찬의궤(進饌儀軌)』에는 원무 2인, 협무 10인씩 두 줄(20인)로 구성되어 있는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협무의 수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901년(광무 5)의 『국연정재창사초록(國讌呈才唱詞抄錄)』에 의하면 창사는 없고 그 춤만이 전한 것으로 되어 있어, 「광수무」는 숙종 이후 1901년 무렵까지 상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춤의 반주로 쓰이는 음악은 「여민락령(與民樂令)」이었다.

1829년(순조 29) 『진찬의궤』에 의한 무동의 복식은 부용관(芙蓉冠)을 쓰고,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녹색단령(綠色團領)에 화화방보(畫花方補)를 했으며, 두석록정대(豆錫綠鞓帶)를 띠고 흑화를 신었다.

참고문헌

  • - 『진연의궤』(1719)

  • - 『국연정재창사초록』(1901)

  • -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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