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신창동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서기전 2세기경의 초기 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걸쳐 영산강 상류 지역에 형성된 농경 복합유적.
이칭
이칭
광주신창동저습지유적
유적
건립 시기
초기 철기시대 중기~원삼국시대 초기
면적
260,715㎡
소재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광주 신창동 유적(光州 新昌洞 遺蹟)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92년 09월 09일 지정)
소재지
광주 광산구 신창동 512-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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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광주신창동유적은 서기전 2세기경의 초기 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걸쳐 영산강 상류 지역에 형성된 생산 및 생활, 매장, 교역 활동 등이 망라된 거점 농경 복합유적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하며, 1963년 53기의 옹관묘가 조사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 발굴 조사에서 토기 가마, 환호, 주거지, 밭 유구 등과 함께 목기와 칠기, 볍씨 등의 다양한 곡물 자료와 동·식물류가 포함된 대규모 저습지가 확인되었다. 서기전 2세기경 농촌 마을의 경관과 사회상, 생활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 유적이다.

정의
서기전 2세기경의 초기 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걸쳐 영산강 상류 지역에 형성된 농경 복합유적.
발굴 경위 및 결과

광주신창동유적(光州新昌洞遺蹟)은 1963년 서울대학교 조사단이 총 53기의 옹관묘를 조사하여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이 도로공사로 인한 긴급 발굴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덧띠토기를 생산한 토기 가마와 환호(環豪) · 주거지 및 밭 유구와 함께 목기와 칠기가 포함된 다양한 유기물층으로 이루어진 저습지(低濕地) 유적이 확인됨으로써 보존 조치가 이루어지고, 1992년 9월 9일 면적 260,715㎡가 사적 제375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1995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저습지와 주변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유적의 특징

광주신창동유적은 크게 옹관묘 지구와 주거 구역, 토기 가마와 밭 유구를 포함한 생산 구역, 저습지 등으로 구분된다.

옹관묘 지구는 유적의 서쪽 언덕에 위치하며 4m×28m의 면적에서 53기의 소형 옹관묘가 발견되었다. 옹관은 길이 30~50㎝ 정도의 크기로 단옹(單甕)과 삼옹(三甕) 각 1점 외에 51기는 합구식(合口式)의 이음독널이며 횡치식(橫置式)이 기본이다. 옹관은 송국리형토기와 신창동식의 우각형 손잡이가 달린 덧띠토기를 사용하였으며 어린이용 무덤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청동제 칼자루끝장식 1점과 쇳조각, 돌도끼 및 돌살촉, 소형 토기류 등이 있다.

주거 구역은 대체로 반월촌마을과 언덕의 남서쪽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면에 위치하며 밀집도가 높고 중첩 분포되는 양상을 띤다. 시기는 덧띠토기 단계의 평면 타원형 또는 직사각형 계통의 주거지가 빠르고, 마한계의 타날문토기류가 출토되는 4주식의 네모반듯한 모양의 계통이 뒤를 따른다. 유물은 덧띠토기 단계의 크고 작은 옹과 시루 · 굽다리접시 · 뚜껑 · 검은간토기 · 소품(小品) · 상형토기 · 가락고동 등과 타날문토기 단계의 부드러운 성질을 지닌 원저단경호 및 장란형토기, 적갈색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생산 구역은 유적의 남쪽 언덕 위와 비탈면에서 확인된 토기 가마와 밭 유구, 반월촌마을 남쪽 끝부분 저습지에서 확인된 논〔水田〕이 대표적이다. 토기 가마는 환호의 일부를 이용한 것으로 너비 2m의 한뎃가마이다. 내부에서 숯이 포함된 재와 함께 굽다리접시 · 시루 · 흑도장경호(擎壺) · 옹과 같은 신창동식 덧띠토기의 다양한 그릇 종류가 확인되었다. 밭 유구는 너비 10~25㎝인 5개의 모래 띠가 너비 40~70㎝ 정도를 두고 길이 920㎝ 가량 일정한 형태로 발견되었다.

발굴 당시에는 조상 유구(條狀遺構)로 불렸으나 모래 띠 주변의 흙에서 다량의 벼 규산체(硅酸體)가 검출됨으로써 밭벼〔陸稻〕가 재배되었음이 밝혀졌다. 논은 화분(禾粉) 분석과 흙층의 평면에서 확인되었다. 저습지에 형성된 미고지(微高地)를 이용하여 경작 면적을 조성한 것으로 논둑과 같은 정형화된 구획 시설이 없다. 조방적 형태의 논벼 재배 방식으로 당시 토지 이용의 새로운 양상을 암시한다.

저습지는 영산강 가장자리에 형성된 배후습지(背後濕地)를 이용한 것으로 1992년에 처음 확인되었다. 이후 수차례의 조사에서 왕겨와 볏짚, 나뭇가지와 목재 등 초목류(草木類)로 이루어진 유기물 퇴적층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 층위의 중심 소재는 벼 껍질(왕겨)이며 두께는 155㎝이다. 덧띠토기 단계의 다양한 토기류, 목기와 칠기, 유리, 탄화미(炭化米)와 사람의 뼈, 동물 뼈를 비롯한 각종 동식물 자료 등 저습지 조사에서 출토된 대부분의 유물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층위의 아래쪽 부분은 저습지 바닥면과 옛 지표면으로 고상식(高床式) 물가 건물의 기둥으로 보이는 나무 기둥이 있으며, 펄층에서는 말조개 · 우렁이 등 민물패류와 점뼈 및 동물 뼈 등이 채집되었다.

출토 유물의 특징

유물은 토기류와 목 · 칠기류, 금속기, 동식물 유체 및 자연 유물로 구분된다.

토기류는 민무늬토기 전통을 갖는 굽다리접시 · 옹 · 호 · 바리 · 시루 · 대접 · 뚜껑 · 흑도 등 서기전 2세기경 덧띠토기 단계의 모든 형식과 의례 관련 토제품(土製品)이 발견되었다.

목 · 칠기류는 목제의 검과 칼자루끝장식, 칠초칼집을 포함한 무기류, 접시와 국자 · 대부호 · 컵 등 다양한 목 · 칠제 식생활 용구류, 낫자루와 괭이 · 절구공이 · 방망이 등의 농구류, 수레바퀴와 삼태기 등의 운반구, 실감개〔絲卷〕와 바디를 비롯한 베틀부속구, 발화구 · 신발골 · 집게 · 싸리비 · 삿자리 · 소쿠리 테 · 문짝 등 각종 생활 관련 유물과 물결무늬칠기 및 조형 목제품(鳥形木製品), 현악기 등 농경의례를 위한 제의(祭儀) 자료를 망라한다.

특히 칠이 담긴 채 출토된 칠 용기와 마연용 삼베, 칠 주걱 등은 광주신창동유적에서 도태(陶胎)를 포함한 다양한 칠기의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출토된 삼베와 비단의 직물 자료와 베틀 부속구는 이 시기에 삼을 심어 베를 짰을 뿐만 아니라 누에치기와 비단을 생산했다고 하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을 뒷받침한다.

금속 유물은 저습지 주변의 편평한 위쪽 흙층에서 출토된 것으로 철모와 철검, 칼집의 금구, 중국제 동전인 오수전(五銖錢)과 철경부동촉(鐵莖付銅鏃)이 확인된다. 특히 출토된 동촉과 오수전은 이 유적의 성격과 시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동물 유체는 굴과 돔 · 재첩 · 잉어 · 가물치 등 어패류와 소와 사슴 · 멧돼지 등 포유류, 꿩과 오리 · 까마귀 · 기러기 등 조류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뼈바늘과 점뼈가 출토되었다. 식물 유체는 탄화미와 왕겨, 볏짚과 같은 벼 자료와 조 · 밀 · 오이 · 들깨 · 박 · 삼〔麻〕 등 경작류와 돌피, 명아주류, 사초과의 논 잡초를 포함한 다양한 습지식물이 확인되었다. 이외에 견과류인 상수리 등 도토리류와 개복숭아 · 호도 등이 있고 산머루 씨앗도 발견되었다.

유적의 토양분석 결과 고식생(古植生)은 소나무 · 참나무 · 오리나무 · 벚나무 · 밤나무 · 느티나무 등 온대 수림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회충과 편충 등의 기생충란도 검출되었다. 유적에서 확인된 대외 교류에 의한 유입 자료는 중국계의 오수전과 동촉, 낙랑과 일본, 제주도에서 산출된 토기의 조각 등이 있다.

의의 및 평가

광주신창동유적은 영산강 상류 지역에 형성된 서기전 2세기경 덧띠토기 문화 단계의 농경 복합유적이다. 저습지 유적, 벼농사를 배경으로 한 2000년 전 농촌의 경관과 의례, 생활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자료와 함께 동북아시아 대외 교류 자료가 확인된 우리나라의 대표 유적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조현종 외, 『광주신창동저습지유적(光州新昌洞低濕地遺蹟)』 ①~⑧ (국립광주박물관, 1997~2016)
김원룡, 「신창리옹관묘지(新昌里甕棺墓地)」(『서울대학교고고인류학총간』 1, 1964)

논문

조현종, 「신창동유적의 제사와 의례」(『신창동유적의 제사와 의례 국제학술심포지움』, 국립광주박물관, 2014)
조현종, 「신창동유적의 도작문화」(『신창동/2000년전의 타임캡슐』, 국립광주박물관, 2012)
조현종, 「신창동의 목기와 칠기」(『신창동/2000년전의 타임캡슐』, 국립광주박물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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