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동김녕리 송동지 영감이 버섯 · 우무 · 미역 등 진상물을 배에 싣고 서울에 올라가 진상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광청 고을 허 정승 댁에 머물게 되었다. 밤이 깊어도 잠이 안 오므로 송동지 영감은 뜰을 배회하다가 허 정승의 딸 광청 아기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들어가 사랑을 나누었다. 이튿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배를 띄워 제주로 돌아왔다.
다음 해 송동지 영감은 진상을 하러 갈 것을 자원하여 다시 서울로 올라갔고 진상을 마치고 광청 고을 허 정승 댁에 들렀다. 허 정승 딸 광청 아기는 임신하여 만삭이 되어 있었는데, 광청 아기는 송동지 영감을 만나자 제주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였다. 당시는 제주와 육지 간에 이주를 금지하던 때이므로, 송동지 영감은 이를 뿌리치고 홀로 배를 띄우려 하였다. 이때 광청 아기가 쫓아가 배에 오르려다가 사공이 발판을 당기는 바람에 바닷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송동지 영감의 배가 동김녕리 포구에 닿았는데, 이때 마중 나왔던 송동지 영감의 딸이 갑자기 정신 이상자처럼 행동하며 “나는 광청 고을 광청 아기"라고 말했다. 광청 아기의 혼이 딸에게 내린 것을 알게 된 송동지 영감은 광청 아기의 원한을 풀어 주고자 심방을 불러 굿을 하고, 셋째 아들을 광청 아기의 양자로 삼아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그 이후 송씨 댁은 부자가 되었고, 양자인 아들은 무과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쳤다. 그 뒤 동김녕리 송씨 집안에서는 광청 아기를 집안 수호신으로 삼아 광[庫房]에 모시고 대대손손으로 명절과 제사 때마다 제물을 올려 대접하고 또 해마다 굿을 하여 위하게 되었다.
진상이나 교역 때문에 육지로 나간 제주 남자를 따라 제주 섬에 들어온 육지 처녀를 조상으로 모시게 된 내력을 풀이한다는 점에서 「 구실할망본풀이」와 유사하다. 그러나 구실할망과는 달리 광청 아기는 '원사(冤死)'와 '해원(解冤)'을 거쳐 조상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이 본풀이는 원혼을 위하면 도리어 수호신이 되어 준다는 민속 신앙의 설화인데, 『송고승전(宋高僧傳)』 권4의 '의상전(義湘傳)'에 나오는 「선묘설화(善妙說話)」와 맥락이 같아 주목된다. 출륙금지령 등으로 제주도와 육지 사이에 자유로운 이주가 금지되던 시기에도 육지의 신앙이 제주에 수용된 양상을 보여주는 본풀이이다. 송씨 댁 조상인 광청 아기가 김녕리의 다른 집안에서도 제향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 한 집안에서 모시는 조상이 집안 외부로 확대되는 양상 또한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