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제주시 조천면 신촌리에 김씨 사공이 살았다. 김씨 사공은 제주의 명산물인 버섯 · 우무 · 미역 · 감귤 등을 배에 싣고 진상하러 한양을 자주 다녔다. 어느 해 진상을 무사히 마치고, 밤중에 서대문 바깥을 지나가다가 적적한 들판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 처녀는 허 정승의 딸로, 부모 눈에 거슬려 쫓겨나 갈 곳이 없어 운다고 했다. 김 사공이 그대로 지나가려 하니 허 정승 딸은 그의 도포 자락을 붙잡고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였다. 김 사공은 자신이 그 고을 사람이 아니고 제주 사람이어서 안 되겠다고 했으나, 허 정승 딸은 그래도 데려가 달라고 간청하였다. 김 사공은 할 수 없이 허 정승 딸을 남몰래 숨겨 제주에 데리고 와 집에 두었다.
한 해 두 해 지내던 허 정승 딸은 해녀들의 작업 광경을 보고, 해녀 도구를 마련해 주면 자기도 해녀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해녀 도구를 마련해 주니 허 정승 딸은 해녀 일을 시작하였는데 그 솜씨가 대단했다. 부근 바다를 샅샅이 누비며 대전복 · 소전복을 1천 근씩 따 내었고, 그 전복 속에서는 진주가 닷 말 닷 되나 쏟아져 나왔다. 큰 부자가 된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이 천운이라 하여 그 진주를 임금님께 진상하였다. 임금님은 이를 가상히 여겨 김 사공에게는 동지 벼슬을 주고, 부인에게는 옷이며 장신구 등의 상과 함께 부인 벼슬을 하사하였다. 그래서 이들 부부를 ‘김 동지 영감’ · ‘구실 할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딸 아홉을 낳고 일생을 마치게 되었는데, 구실 할망은 딸들에게 “너희들 뒤를 따라가 수호해 줄 터이니, 명절 때나 기일 제사 때 광[庫房]에 상을 차려 위하고, 굿할 때는 풍악으로 내 간장을 풀어 달라.”라고 유언하였다. 이렇게 해서 구실 할망은 이 집안의 딸에서 딸로 계승되어 위하는 조상신이 되었다.
진상이나 교역 때문에 육지로 나간 제주 남자를 따라 제주 섬에 들어온 육지 처녀를 조상으로 위하게 된 내력을 풀이한다는 점에서 「 광청아기본풀이」와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구실 할망은 광청 아기와는 달리 죽어 원혼이 되었다가 해원굿을 받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조상으로 모셔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