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남빈흥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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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만수가 1792년의 과문과 1796년 이황을 치제한 사실을 모아 엮은 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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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이만수가 1792년의 과문과 1796년 이황을 치제한 사실을 모아 엮은 과문집.
내용

3권 1책. 목판본. 1796년 도산서원에서 간행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에는 전교(傳敎)·어제제문(御製祭文)·서계(書啓), 권2에는 유생응제방(儒生應製榜), 강세백(姜世白) 등의 부 4편,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이 찬한 도산시사단비명(陶山試士壇碑銘) 등이 있고, 부록 「치제시일기(致祭時日記)」에는 일기·일기지(日記識)·서정기행이백운(西征紀行二百韻)이 있다.

그 당시의 전국 각지에는 천주교가 전하고 있었으나 경상도만은 이황 등의 성리학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이것을 선인들의 유덕 때문이라 하여 옥산서원(玉山書院)과 도산서원에 치제하게 하고, 정조 자신이 제문까지 지어 내렸다.

당일의 고시관(考試官)은 직각(直閣) 이만수, 수권관(收券官) 순흥부사 허전(許腆), 금난관(禁亂官) 예안현감 윤영(尹瑩), 입문관(入門官) 봉화현감 이상영(李尙榮)이었다. 당일 응시한 사람은 3천6백여 명이었고, 강세백·김희락(金熙洛) 등 2인이 급제하고, 김상구(金象九) 등 28인에게는 각각 후한 상을 내렸다.

권2의 끝에는 강세백·김희락·김상구·조심(曺深) 등의 부가 수록되어 있다. 「치제시일기」에는 조선 중기에 있어서 각신(閣臣)을 보내 치제한 사실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어 당시의 제례관계를 상고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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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윤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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