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1년(광해군 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황(李滉)과 이정(李禎)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6년(숙종 2)에 ‘구계’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714년에 김덕함(金德諴)을 추가로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된 뒤 서당으로 사용해오다가, 광복 후 유림들에 의하여 다시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신문(神門), 4칸의 강당(講堂), 2칸의 주소(廚所), 3칸의 고자처(庫子處), 외문(外門) 등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으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을 토론하는 장소로 사용되어왔으나, 지금은 향사 때에 유생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주소는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여두는 곳이며, 고자처는 고자의 식구가 생활하는 곳이다.
이 서원은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며, 재산으로는 전답 2,000여 평, 임야 1.5정보, 대지 7백 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