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년(정조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서유(徐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구산서사(龜山書社)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39년(헌종 5)에 ‘구산’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848년에 서인원(徐仁元)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83년 지방유림들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재락당(齋樂堂), 4칸의 숙흥재(夙興齋)·일신재(日新齋)·유의문(由義門), 3칸의 전사청(奠祀廳), 2칸의 어서각(御書閣), 3칸의 장서각(藏書閣), 신도비각(神道碑閣) 등이 있다.
묘우의 중앙에는 서유의 위패가, 오른쪽에는 서인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재락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으며, 원내의 여러 행사와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숙흥재와 일신재는 유생들이 공부하고 거처하는 곳이며, 전사청은 향례 때 제수를 마련하여두고 제구를 보관하는 곳이다. 어서각에는 태종의 친필이 보관되어 있으며, 장서각은 서적을 보관하여두는 곳이다.
매년 2월 상정(上丁)과 8월 상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7변(籩) 5두(豆)이다. 유물로는 약간의 문집이 보관되어 있고, 재산으로는 대지 1,500평, 전답 3,000여 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