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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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권재령의 시·서(書)·제문·잠 등을 수록한 시문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혁동 (성균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권재령의 구산집 중 서문 미디어 정보

권재령의 구산집 중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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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권재령의 시·서(書)·제문·잠 등을 수록한 시문집.

내용

4권 2책. 목활자본. 1910년 대섭(大燮) 등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으며, 권명한(權明翰)의 서가 있고, 발은 없다.

권1은 시 100수, 권2는 소 1편, 서(書) 41편, 권3은 제문 22편, 축문 1편, 서(序) 5편, 기 1편, 상량문 3편, 행장 1편, 설 1편, 잠 2편, 명 1편, 잡저 2편, 권4는 부록으로 행장 1편, 묘갈명 1편, 유사 1편, 만 29편, 제문 7편, 광지명(壙誌銘) 1편, 일록(日錄)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시상이 고매하고 시감이 중후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서산김선생만칠절(西山金先生挽七節)」은 김흥락(金興洛)의 유학연원을 이황(李滉)에게 두고 그의 학덕을 찬양하였으며, 자기는 그 문하에서 30년 동안 사사했으나 학업을 이루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김봉화(金鳳和)에게 보낸 편지는 별지(別紙)로서 『중용』의 의심난 항목에 대하여 자기의 의견을 첨부하여 질의한 내용이다. 「포고팔로문(布告八路文)」은 1895년 왜병이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했을 때 장영서기(將營書記)로 의병을 일으키자는 내용의 포고문이다.

「신명설(信命說)」은 스승인 김흥락을 처음 찾아보았을 때, 신명(信命)이란 두 글자를 받고 물러 나와서 자기가 신명으로 삼을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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