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황청

  • 역사
  • 제도
조선시대 흉년이 들었을 때 기민(飢民)을 구제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서.
이칭
  • 이칭균역청, 상평청(常平廳), 진휼청(賑恤廳)
제도/관청
  • 상급 기관비변사
  • 설치 시기조선시대
  • 폐지 시기1626년(인조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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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흉년이 들었을 때 기민(飢民)을 구제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서.

내용

처음에는 비변사에서 관장하다가 1626년(인조 4) 선혜청에 이속시켜 상평청(常平廳)과 합치게 하였다. 뒤에는 진휼청(賑恤廳)으로 개칭하였는데, 보통 때는 상평청으로 부르다가 구황업무를 행할 때만 진휼청으로 불렀다. 1753년(영조 29)에 균역청과 병합되었으나 그 명칭은 남겨두었고, 선혜청의 낭청 1인이 균역 · 상평 · 진휼청의 사무를 아울러 보도록 하였다. →진휼청

참고문헌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만기요람(萬機要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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