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새로 건립하였다. 주로 빈전(殯殿)으로 사용되었으며, 복도를 통해 주변의 건물과 연결되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없었는데, 1867년(고종 4)에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처음으로 건립되었다. 1872년에 조선 건국 480주년을 기념하여 태조의 존호(尊號)를 올리면서 영희전(永禧殿)에 있던 태조 어진(御眞)을 베껴 그리기 위해서 이곳으로 옮겼다가 1개월 뒤에 다시 영희전으로 옮겼다. 1890년(고종 27)에는 익종(翼宗)의 비인 대왕대비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 조씨(趙氏)의 국상(國喪)에 빈전으로 사용되었고, 1895년에는 명성왕후(明成皇后, 1851∼1895) 민씨(閔氏)의 빈전으로도 쓰였다. 그 뒤에 헐렸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주변에는 혼전(魂殿)으로 건립된 문경전(文慶殿)과 회안전(會安殿) 등이 자리하고 있다.
앞면 5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모습이다. 앞면의 가운데칸인 어칸[御間]은 12척 5촌이고, 나머지칸은 각각 10척이다.옆면 앞뒤면의 툇간[退間]은 각각 7척이며, 가운데 2칸은 각각 10척이다. 건물 중앙의 3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고, 그 왼쪽과 오른쪽에는 방을 두었다. 앞면은 제기(祭器)를 차리기 위해서 만든 복도를 거쳐 경안문(景安門)으로 연결된다. 동북쪽 모퉁이에는 영사재(永思齋)가 연결되며, 주변에 공묵재(恭黙齋) 등이 있다.
이 건물은 경복궁 서북쪽의 혼전과 빈전 영역을 대표하는 건물로, 당시 궁궐 공간을 활용한 양상을 살필 수 있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