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있는 조선후기 복온공주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의 재실. 재사(齋舍).
역사적 변천
김병주는 본관이 안동이고, 자는 정구(定九)이며, 시호는 효정공(孝定公)이다. 1830년(순조 30)에 부마가 되어 창녕위에 봉해졌다. 복온공주가 가례 이후 2년도 채 안되어 세상을 떠났는데, 자식이 없자 족형인 김병교(金炳喬)의 아들인 김도균(金道均)을 후사로 삼았다. 하지만 역시 자식이 없어서 제사는 손자로 승중(承重)한 김석진(金奭鎭, 1843~1910)에 의해서 행해졌다.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官)을 지냈는데, 1907년(고종 44)에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뒤, 이곳으로 들어와 거주하였다. 그 뒤 1910년에 일제가 주는 남작 작위를 거절하고는 이곳에서 순국자결하였다.
내용
참고문헌
- 『홍파동 홍난파가옥 등 8개소 등록문화재 기록화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06)
- 『궁집』(주남철, 일지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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